힘써 기도하라
안석수 목사
*본문/ 행 1:12-14
주일뿐만 아니라 주주에도 틈이 나면 교회에 나와 열심히 봉사하던 집사님이 담임목사님에게 이런 글을 보냈습니다.
“정말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업이 점점 바빠집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바빠지기를 원했지만 막상 바빠지니 무엇을 포기해야 할 지 걱정입니다.”
이 글의 내용은 사업과 주중 교회 봉사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담임목사님은 이런 답변을 주었습니다. “시업이 바빠진다니 축하를 드립니다. 그 경우 포기해야할 것은 당연히 주중 교회 봉사입니다. 주어진 사업에 몰두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집사님에게 맡기신 귀중한 사역입니다. 교회 봉사는 예배가 있는 날에만 하셔도 충분합니다.‘
제가 5년간 근무했던 가나안 농군하교의 이념이 “근로, 봉사, 희생”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전에 목수로서 열심히 일하신 것이 근로이고, 공생애 기간 동안 모두를 섬긴 것이 봉사요, 희생은 바로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인데 이 세 가지를 본받자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한 가지 봉사, 봉사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 “남의 뜻을 받들어 섬김”입니다.
철저하게 남을 위한 행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그 의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우리를 섬겨 주신 주님의 생명과 사랑 그리고 말씀의 능력을 비로소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봉사는 다른 사람을 위한 행위이면서 동시에 자기신앙 성숙을 위해서 반드시 치루어야 할 필수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형태의 봉사든, 봉사에 참여한 성도들의 신앙이 더 깊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봉사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봉사를 기꺼이 반복하는 것은 그것이 신앙에 유익함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어떤 형태의 봉사에든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황에 너무나 중요하고 유익한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교회에서의 봉사로 끝이 되어서는 아니 되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체력을 길러 교회에서의 봉사가 교회 밖 세상의 삶으로 이어질 때 세상이 우리 그리스도인에 의해 새로워진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하늘을 그토록 오랫동안 우러러 보았던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면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제자들이 제일 먼저 무엇을 했는지 본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삶의 현장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기도였습니다.
어느 책에서 미국 한인교회 특별새벽기도회 슬로건이 인상적이어서 소개합니다.
“부모의 새벽기도 자녀의 평생축복
자녀의 새벽기도 부모의 노후대책
아내의 새벽기도 남편의 영적성공“
감람산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기도에 열심이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때 제자들이 기도하며 힘써 구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답게 이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와 지혜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증인으로 순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교회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봉사의 삶이 교회 안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은 결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생활과 교회 봉사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시작하여 세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어질 때, 바로 그들을 도구 삼아 주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셨다는 “생명의 증언록”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사람을 주님은 필요로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을 통해서만 이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갖 유혹과 욕망의 법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결단과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기도만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힘과 용기가 되고 지혜의 원천이 됩니다.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띠 띠고 자기 원하는 곳으로 다니고, 또 원하는 것을 행하려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 자신이 계획한대로 스스로 행한 일은 거의 없고 모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되어진 일들뿐임을 알게 됩니다.
그 모든 일들이 모두 주님에 의해 되어진 일들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은 사람은 주님 앞에 두 팔을 벌리기 마련입니다. 주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이끌려 가기 위함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낭비 없는 최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혹 어떤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 신안생활이라면 이제부터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가만있어도 주님이 다 알아서 이끌어 주실 텐데, 구태여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면서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 해답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는 밤이 맞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임박한 죽음을 내다보시며,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얼마나 그 마음이 괴로우셨으면 아예 땅바닥에 엎드린 채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을까요?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애절했던지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에 피가 배어날 정도였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얻으신 응답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래서 십자가를 모면하셨습니까?
기도를 마치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 26:45-46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언제 고민하고 슬퍼했느냐는 뜻 추호의 흔들림 없이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발을 내디디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절규하시던 예수님께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십자가의 죽으심이심을 알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감수하실 수 있었던 힘과 용기와 지혜의 원천이 바로 겟세마네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르게 분별하셨습니다.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좇아 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죄의 본성을 지닌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그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를 통해 서만 가능합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욕망과 본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줍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기도의 현장이었던 감람산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제자들이 무엇보다 먼저 기도에 열중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제자들 역시 기도를 통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용기와 지혜를 얻고자한 것입니다.
인간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또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칠 때, 심히 슬퍼하며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직면할 때,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자신의 바람을 아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동기이고 기도의 목적은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기도 내용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바람이나 계획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매일 일전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 하되 자기 소원을 고수함이 아니라 도리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온전히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밖 세상에서 기도하며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성도에 의해 세상이 새로워집니다. 그런 성도만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중요한 이유는 그 역할이 교회를 이루는 사람들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을 온전히 세워주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바로 그 하나님 나라임을 아는 성도는 그런 교회,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은 없습니다.
그 삶이 이 시대를 위한 사도행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은 오직 기도에 힘쓰는 것에서 시작됨을 잊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3년이나 모시고 살던 제자들은 예수님 승천하신 후에 먼저 기도에 힘썼습니다. 기도 없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고, 세상에서 세상을 새롭게 하는 사도행전에 기록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전에 나온 우리들이 기도 없이는 이기적인 집단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에 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감람산의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님 앞에 두 팔을 벌리고 항복하여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오직 기도를 힘입어 이 세상에서 세상을 새롭게 하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 교회다운 교회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