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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밤이 아니어야 한다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Aug 14, 2019
  • 조회 7

밤이 밤이 아니어야 한다

안석수 목사

*본문/ 13:26-30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왕이 될 계획도 포부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해 한 민족 한 나라의 역사상 첫 번째 왕이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처음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발탁되는 순간, 그는 너무나도 당황하여 짐짝 사이에 숨어 버릴 정도로 순박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사울 역시 권력과 금력의 맛을 보면서 사람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길 정도로 안하무인이 되더니 급기야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을 자행하고 말았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스승으로 추앙하던 사무엘 선지자가 세상을 떠난 직후였습니다. 숙적 불레셋이 대군을 이끌고 또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습니다. 그 군대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감히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공포에 떨고 있던 사울 왕은 어처구니없게도, 죽은 귀신을 불러 낸다는 여자 무당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죽은 사무엘의 귀신을 불러 달라고 무당에게 간청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영혼을, 그 하나님 나라에서 이 땅으로 끌어내릴 수 없으므로 그것은 인간을 파멸시키려는 거짓 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울 왕은 내키지 않아 하는 무당을 닦달하여 막무가내로 사무엘의 영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땅 아래서 올라온, 사무엘을 가장한 거짓 영의 저주를 받고 끝내 파멸하고 맙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면 모르되,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요 또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된 점을 감안할 때,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비정상적인 일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삼상 28:8은 그 일이 캄캄한 밤중에 일어 난 일임을 증거 합니다. 바로 그 순간 사울 왕이 영적 어둠에 처해 있었음을 뜻합니다. 사울의 영혼이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고,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직업도 버리고 처자도 미련 없이 버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3년 동안 밤낮으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입니다. 더욱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주님을 버리더라도 자기만은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노라 호언장담하던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런 그가 어찌 예수님을 부인하고 모른다 맹세하는 것만으로 모자라, 서슴없이 자주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때도 칠흑 같은 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날 밤, 베드로 역시 그 영혼이 어둠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 어둠은 이처럼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세상과 자신을 한꺼번에 상실케 합니다. 영혼의 밤을 경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보여 주시기 위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그 의미를 설명하신 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18 -“내가 너희를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사람이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발꿈치를 들었다.”는 의미는 무슨 뜻일까요?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좌를 노리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 평소 다윗 왕의 은덕을 입은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윗 왕을 배신하고 반군의 편에 섰습니다. 배신당한 다윗이 얼마나 괴롭던지 그 심정을 41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바로 다윗이 그 측근에게 처참하게 배신당한 것처럼, 예수님 역시 제자들에게 배신당할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롯 유다를 두고 하신 말씀으로, 가롯 유다에 대한 사랑의 권면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마음을 고쳐먹으라는 당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의 괴로움을 억제하시지 못한 채,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고 이번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팔아 넘기기로 이미 작정한 가롯 유다가 그 말을 듣고 지금이라도 회개할 것을 바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롯 유다는 얼마나 태연하게 시치미를 떼고 있었는지, 제자들 중 누구도 가롯 유다가 배신자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26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사람이 그니라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셨다가 가롯 유다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이 구절은 가롯 유다의 회개를 마지막으로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심정을 애절하게 보여 줍니다. 가롯 유다야! 나를 팔 사람릉 바로 너다. 네 마음속에 그 음모를 감추고 있지 않느냐, 네가 정말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돌아서라.“

그러나 불행하게도 27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각을 받은 후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떠라.“ 회개를 촉구하는 마지막 떡 조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사랑의 제의를 철저하게 묵살해 버림으로 끝내 사단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이 마지막 순간에 조차, 그들의 동료인 가롯 유다가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이란 사실을 상상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롯 유다는 철저하게 이중적이었습니다. 스승을 사지 몰아넣은 모든 음모를 마음속에 가득 담고서도, 겉으로는 완벽하게 위장하고 있는 완전한 위선자였습니다. 어찌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이처럼 완전한 이중인격자일 수 있으며, 스승을, 말씀을, 하나님을 배신하고서도 이렇듯 태연할 수 있을까요?

본문 요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그때에도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유다 역시 어둠에 갇힌 어둠의 노예, 밤의 포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밤은 우리의 시야를 앗아갑니다. 어둠은 우리의 방향 감각을 상실케 합니다. 대신 밤은 감추어져 어떤 우리의 욕망과 본능을 자극합니다. 내일을 생각지 않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환락과 쾌락 속으로 뛰어들라고 부추기는 것도 어둠입니다. 이처럼 밤은 자신과 세상을 동시에 상실케 하므로 밤의 어둠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에게 밤의 어둠이 경계 대상인 것은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은 캄캄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예수님의 탄생을 알았으며, 그 밤, 별의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님을 찾아 경배했습니다. 벌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구주께서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천사들로부터 듣고 예루살렘 외양간으로 뛰어 가던 때도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400년간 노예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꿈에도 그리던 해방이 선포되던 순간도 한밤중이었습니다. 아버지 다윗 왕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일천번제, 곧 천 번의 예배를 드리던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도 밤이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도단 성을 몇 겹으로 포위하였을 때 선지자 엘리사의 수행원 게하시가, 도단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아람 군대를 오히려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를 본 것도 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국토를 유린한 앗수르 산헤립의 군대 185천 명을 하나님께서 단숨에 전멸시킨 것도 밤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들을 지키던 간수가 회개하고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역사가 일어난 것도 밤중이었습니다. 환락의 도시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지쳐 있던 바울에게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18:9-10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도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니.“

얼마나 감격적인 격려의 말씀입니까? 그때도 밤이었습니다. 로마를 향하던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로 태풍에 휩싸여 열흘 밤낮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모두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바울아 두려워 말라.“하시며 예수님께서 바울을 붙들어 주신 것도 역시 밤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이 흐르기까지 기도하시다가 의연히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신 것도 한밤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시각 역시 새벽이 되기 전, 칠흑 같은 밤중이었습니다. 여인들이 미명에, 다시 말해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 때, 예수님은 이미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새벽이 되기도 전, 한밤중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눈을 뜨고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듯이, 눈을 감고 있다고 막상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듯이, 낮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낮일 수 없고, 밤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밤인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해가 중천에 떠 있어도 잠에 빠진 사람에게는 낮이 밤이듯이, 칠흑 같은 밤중에도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밤이 낮이 되는 것입니다. 건실한 삶을 아는 사람에게는 더욱 건실한 내일을 위해 반드시 밤이 있어야 하듯, 건실한 신앙인에게도 밤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밤이란, 낮에는 느끼지 못하고 생각지 못하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 주며, 신령한 것을 온전히 우리에게 담아주는 은총의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별을 보는 사람에게는 밤이, 밤이 아닙니다. 등대를 보는 사람에게는 어둠이, 어둠이 아닙니다. 나침반을 보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비행기의 계기판을 보는 비행사는 칠흑 같은 밤중에도 하늘의 길을 놓치지 않습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영혼의 밤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사람에게는 그 영혼이 어둠에 갇히는 밤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밤이, 밤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에게는 어둠이, 어둠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짧습니다. 영혼의 어둠에 갇혀 인생을 탕진하기에는 더 더욱 짧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영원한 말씀의 대낮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 주신 인생이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지만, 우리들의 욕망 때문에, 본능 때문에, 우리들의 이기심 때문에 우리 영혼을 스스로 어둠에 가두고 인생을 의미 없이 허비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 시간 이 같은 우리들의 무지를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캄캄하다 할지라도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 영혼에 밤이 없게 하옵소서. 날마다 깨어 기도하므로 밤이, 밤이 되지 않도록 하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어둠이, 어둠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들의 매일이 오직 말씀의 대낮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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