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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작은 것의 가치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Mar 31, 2018
  • 조회 6056

작은 것의 가치

 안석수목사

*4:17-22

 

사람들은 다윗하면 가장 먼저 골리앗을 떠올립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쌍방의 격차가 심하게 나는 싸움을 가리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말할 정도로 다윗과 골리앗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윗이 골리앗을 제압함으로 우리가 알고 잇는 바대로의 다윗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 도처에서 인간 간의 크고 작은 싸움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도 지금부터 3천여 년 전 아득히 먼 이스라엘에서 벌어졌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왜 오늘날까지 믿지 않는 사람도 언급할 정도로 유명할까요? 그것은 다윗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침공한 불레셋의 골리앗은 신장이 2미터 97센티미터인 데다, 몸에 걸친 갑옷의 무게는 한 사람의 체중에 해당하는 57킬로그램이나 되었습니다. 그가 어깨에 메고 있는 단창의 창날의 무게만 약 7킬로그램에 달했습니다. 한마디로 골리앗은 전무후무한 거인이었습니다. 그를 보고 이스라엘 군대의 장군들과 군사들은 모두 그 외모에 압도당하여, 감히 누구 한 명 골리앗과 맞서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골리앗이 모독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단신으로 골리앗과 맞섰습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거인과 어린아이의 싸움으로,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그 싸움은 다윗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다윗은 그 승리로 인해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이후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승리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적이었던 만큼, 3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믿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인용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만들어 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아는 사람들 가운데,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과 맞서게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아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당시 다윗은 전쟁에 출정한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집이 전쟁터 곁에 있었기에 당장 너머로 골리앗을 보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때 다윗의 집은 골리앗이 진치고 있던 엘라 골짜기에서 약 60리나 떨어진 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이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당시 이스라엘 왕이었던 사울은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였습니다. 그때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세 명, 장남과 차남 그리고 삼남도 징병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새가 다윗에게 전쟁터에 있는 형들을 위해 보낸 먹거리는 곡식 한 에바, 그리고 빵과 치즈 각 열 덩이였습니다. 한 에바는 우리의 도량형으로 열두 되, 즉 한 말 두 되 입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인들의 빵과 치즈는 커다란 덩어리 형태였습니다. 그러므로 곡식 한 말 두 되와 빵과 치즈 열 덩이씩을 합치면 만만찬은 무게 입니다. 게다가 이새가 있는 베들레헴에서 전쟁터인 엘라 골자기까지는 60리 길이었습니다. 그 무거운 곡식, 그리고 빵과 치즈 열 덩이씩을 지고 그 먼 60리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다윗은 아버지의 명령에 불복할 명분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아버지, 왜 막내인 제가 가야 합니까? 저는 아직 어린 데다 지고 가야할 짐은 너무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너무 멉니다. 제 위로 형들이 네 명이나 있지 않습니까? 형들 중 한 명을 보내시지요.’ 만약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에 불응하려 했다면, 그는 무슨 핑계를 대든 그 일을 형들에게 떠넘기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그때 아버지 심부름에 순종하였으므로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모독하는 골리앗을 목격했고, 그 골리앗과 맞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아버지의 심부름에 순종하지 않았던들 골리앗을 물리친 구국의 영웅 다윗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군의 침입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그에 비하면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먹을거리를 전해주는 심부름은 하찮고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나라를 구하는 일이 위대한 장수의 일이라면, 먹을거리 심부름은 머슴의 몫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만약 다윗이 어린 시절부터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크고 거창하게 보이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먹을거리 심부름 정도는 하찮게 여겨, 자기 일로 간주하지 않았다면, 역설적이게도 그는 나라를 구하는 불세출의 영웅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에 충실했던 결과가 골리앗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위업으로 나타났고, 그 이후 그는 새로운 역사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다윗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약성경 룻기는 이라는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 66권 가운데 여성의 이름으로 책의 제목이 붙여진 것은 에스더서와 룻기뿐입니다. 그러나 릇은 에스더처럼 지체 높은 왕비도 아니었고, 사회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기거나 명성을 크게 떨친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유대인도 아닌, 이방 모압 여인이었던 그녀는 전업주부였을 뿐입니다. 그녀가 잘한 것이라고는, 결혼하고 10년 뒤 남편이 죽어 청상과부가 된 뒤에도 유대인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얼마나 잘 공경했던지, 며느리의 효심에 감동한 시어머니 나오미의 주선으로 보아스란 남자에게 개가한 룻은 오벳이란 아들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이에 시어머니 나오미는 말할 것도 없고, 나오미 주위의 동네 사람들마저 나오미가 아들을 낳은 것처럼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룻이란 한 여인이 이 세상에서 행한 전부입니다.

시집간 여자가 시부모를 잘 공경하고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로, 그것은 조금도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자신의 이상을 당당하게 실현하는 전문직 여성에 비한다면 그것은 하찮고 시시하고 고리타분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본문 22입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지금 룻이 낳은 것은 오벳이라는 핏덩이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 핏덩이가 미래에 태어날 다윗의 할아버지임을, 다시 말해 그 핏덩이가 미래에 낳을 손자가 다윗임을 강조합니다. 그 사실이 얼마나 중요하면 미래에 태어날 다윗의 이름을 미리 기록한 다윗이 족보를 보여주는 것으로 룻기는 끝납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룻은 가사에만 전념한 전업주부인 반면, 그녀의 증손자인 다윗은 블레셋 골리앗의 침범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한 성경의 위인입니다. 왜 룻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다윗을 미리 등장시켜 룻과 다윗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으로 끝났을까요? 전업주부였던 룻이 시어머니를 공경하면서 가사에 충성하지 않았던들 그녀의 시어머니가 그녀를 개가시켜 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요, 그녀가 보아스에게 개가를 하지 않았던들 골리앗을 꺾은 다윗도, 이스라엘 역사의 구심점이 될 다윗도 있을 수 없음을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한 여인이 가사에만 충실해도 그녀로 인해 한 나라의 역사의 지평은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가사에 충실했던 룻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에 새 지평이 열리고, 하찮아 보이는 아버지의 심부름에 순종했던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가 새로워진 사실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크고 작은 일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보기에는 아무리 작아 보이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적인 의미를 지님을 알아야 합니다. 한 개인의 인생도, 한 나라의 역사도, 가장 작고 가장 사소해 보이고 가장 하찮게 보이는 일에 충실한 사람들에 의해 바로 세워짐을 이 시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겉으로 드러나고, 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 세상적인 잣대로 보면 하찮고 시시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만과 겸손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교만은 작은 것의 가치를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도저히 질 수 없는 어린 다윗과의 싸움에서 치욕의 패배를 당한 것은, 단지 작다는 이유만으로 다윗을 업신여겼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잠언 1618말씀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작은 것의 가치를 무시했던 교만한 골리앗이 작은 다윗에게 패했던 것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법칙이었습니다.

반면에 겸손은 작고, 하찮고,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의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시내가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됩니다. 망망대해가, 작고 하찮아 보이는 한 방울의 물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작은 물 한 방울의 가치를 아는 것, 그래서 물 한 방울처럼 하찮아 보이는 일에도 자신의 생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것 즉 바로 이것이 겸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찮아 보이는 먹을거리 심부름에 최선을 다해 응했던 다윗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잠언 1533의 말씀입니다.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하나님의 역사는 작은 일의 가치를 아는 겸손한 사람을 통해 완성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골리앗은 작지만 겸손한 다윗의 적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입니까? 그 일이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룻처럼, 다윗처럼 그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견고하게 세워질 뿐 아니라, 여러분으로 인해 이 시대의 새로운 사도행전이 완성될 것이요, 나아가 이 땅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간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1610 말씀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은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사람은 큰 것에도 불의 하느니라.”

 

祈禱)

하나님 아버지, 룻은 전업주부의 자기 역할에 충성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에 새 지평을 열어 주셨고,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먹을거리를 전해 주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에 순종했다가 골리앗을 물리치는 구국의 영웅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하는 성경의 위인이 되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이 큰 일에도 불의하다는 하나님의 법칙을, 언제 어디서나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피하고 싶은 그 하찮은 일, 세상의 잣대로 볼 때 가장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 작은 일에 우리의 최선을 다함으로, 우리 시대의 신사도행전을 우리의 삶으로 완성시켜 가게 하옵소서. 그와 같은 삶으로 인해 이 땅에,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역사가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어떤 경우에도 작은 것의 가치를 업신여기다가 겸손한 다윗에게 패하는 허황한 골리앗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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