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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나님 중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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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Apr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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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중심의 삶

안석수 목사

*본문/ 9:10-11

 

신실한 한 집사님의 고백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을 믿기가 아주 쉬웠는데,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르게 사는 것임을 알고 나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삶이 예전에 비해 훨씬 평안하고 보람됩니다.”

그 집사님은 그냥 지나가듯 한 말이었지만, 믿음의 역설을 참으로 잘 표현하였습니다. 역설이란 어떤 주의나 주장 혹은 논리에 반대되는 이론이나 말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 예전에 비해 하나님 믿기가 어려워졌다면 그 집사님의 신앙생활 자체가 고달프고 평안과는 거리가 멀어야 논리적으로 맞을 것인데 믿기가 어려워졌지만 오히려 삶이 훨씬 평안하고 보람된다면 그것은 비논리적인 역설입니다.

그러나 역설이란 말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잘 음미해 보면 그 속에서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말이나 의견이 역설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그 집사님의 말은 역설의 두 번째 의미의 관점에서 볼 때 더더욱 역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순되어 보이는 것과 같은 그 집사님의 말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그 집사님의 말을 한 번 음미해 보십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믿기가 쉬울 때는 언제일까요? 하나님을 믿기는 믿되 자기중심적으로 믿을 때입니다. 주일이면 예배에 참석하고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끝납니다. 그 이외에는 일주일 내내 자기 편한 데로, 자신이 원하는 데로만 삽니다. 그에게 기도는 자신에게 아쉬운 것,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시간일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자기중심적으로 믿을 때에는 신앙생활이 아주 쉽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옛 삶과 현재의 삶이 구별도 되지 않는 까닭입니다.

이처럼 쉬운 신앙생활이, 믿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깨닫고 나면 왜 어렵게 느껴질까요? 믿음이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자기 삶의 축을 옮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자기 편한 데로, 자기 원하는 데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필히 자기와의 싸움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속에서 매사에 자기중심으로 살려는 자신의 옛사람과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는 새사람간의 싸움입니다. 믿음은 그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만 자기 삶의 전반에 걸쳐 하나님 중심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어렵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단 한 번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아직까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해 본적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여겨지는 바른 믿음의 삶이 고달프기는커녕, 오히려 예전에 비해 훨씬 평안하고 보람되게 느껴지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요?

그리스도인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의 평강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은총이 그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삶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과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수롭지 않게, 아주 쉽게 시작한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음의 참뜻을 앎과 동시에 어렵게 여겨지면서도 오히려 말할 수 없는 평안과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신앙의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역순으로 생각하면 더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 즉 참된 평안과 보람의 삶임을 깨닫게 되는 사람에게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삶이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됩니다. 그 사람은 이미 그 삶의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맛 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맛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렵겠지만, 그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자기중심적으로 살던 옛 삶으로 돌아갈 것을 아무리 권해도, 그 사람은 결코 되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개가 토한 것을 되삼키는 것처럼 역겹고 백해무익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참 묘미와 극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믿음의 이 묘미와 극치를 신앙생활 속에서 누리기 위해서는 기도의 수준이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녕 무소부재 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또 전지전능하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모르는 것까지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까닭이 어디에 있으며, 또 그 하나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의 참된 평강과 보람 그리고 그 영원한 가치와 절대적인 의미확인하는 시간이요, 기도는 주님 안에서 나와 싸워 이기는 극기의 시간이요, 기도는 자기중심적으로 살던 옛 삶의 무가치함과 무익함을 재확인하면서 새로운 존재로 지향하는 시간입니다. 이와 같은 존재적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이 어둔 세상을 밝히는 말씀의 빛으로 살아가는 새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8:20-21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을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도 없느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하나님보다 돈의 힘을 더 신뢰하여 성령님의 역사마저, 돈으로 사려고 했으니, 만사가 돈으로 해결하려는 그가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또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하나님 나라의 분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에게 기도는 일상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을 부인하고 박해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그가 매일 드리는 기도로는, 그릇된 자기 신념과 관습 그리고 이기심과 욕망강화하기 위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 다마스쿠스에서 드린 그의 기도는 달랐습니다. 바울이 시력을 상실한 채 사흘 동안이나 금식기도를 드렸다는 것 자체가 주님께 자신을 동여매는 기도였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중심으로부터 하나님 중심으로 자기 삶의 축을 옮기는 존재적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웠으면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갈 것을 명령하시며, 보라, 그가 기도하기 때문이다.”라고 감탄하며 말씀하셨겠습니까?

 

사울을 위해 아나니아를 부르신 주님께서는 동시에, 기도하는 사울로 하여금 아나니아의 안수로 자신의 시력을 회복한다는 것은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게 됨을 의미했고, 사울은 기도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게 될 자기 자신을 미리 보았습니다. 그의 기도가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동여맴으로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존재적 기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후, 죽든지 살든지 오직 자신을 통해 주님만 존귀하게 드러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매일 자신을 주님께 동여맴으로, 바울은 그 삶의 참된 평안과 보람 그리고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분명하게 알았고, 매일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으며, 옛 삶의 무익함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시간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그와 동시에 마치 모래시계의 아랫부분처럼, 우리의 삶 속에 반드시 축척되어 남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시간이 무의미한 옛 삶의 답습이 아니라, 참된 보람과 평안 그리고 영원한 가치와 의미로 바꿔지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바울처럼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다. 기도를 통해 우리 자신을, 우리의 심령을 주님께 동여매어야 합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믿음의 묘미를 맛보게 될 것이요, 우리의 삶은 믿음의 극치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로 우리의 심령을 동여맨 주님께서 우리를 친히 안수해 주심으로, 이 어둔 세상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밝히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 모두 말씀 앞에서, 지나간 시간의 축적판인 우리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버렸던, 아니 반드시 버려야 하는 옛 삶이 뜻도 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서야 백년을 산다한들 우리의 삶이 후회와 한탄으로 끝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되 기도를 통해, 우리 자신을 주님께 동여매게 하옵소서. 기도를 통해 옛 삶을 반복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것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기도를 통해 날마다 믿음의 묘미를 맛보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우리의 삶이 믿음의 극치를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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