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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원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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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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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바라보며

안석수 목사

*본문/ 10:7-9

 

영국의 학자요 시인인 하우스먼이 지은 시 중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시장에 갔을 때, 주머니 속에는 동전 몇 닢밖에 없었다.

그래서 살 수 없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그저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다.

이제 세월이 흘러,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만큼 내 주머니는

두툼하다.

그러나 돈도 있고 시장도 여전히 여기 있는데, 나의 그 때, 그 젊은 날은

어디에 있는가?

짧은 시지만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법학자요 가톨릭 신자였던 오경웅 박사는 하우스먼의 이 시를 읽고서, 그의 저서 <동서의 피안>에다 그렇게 썼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유달리 연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어머니는 연을 살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가게에 있는 연은 언제나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몇 번이나 어머니의 돈을 훔쳐서 연을 사곤 하였습니다. 세월이 지나 오경웅 박사는 저술과 강연을 통해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두 개의 연이 아니라 몇 천 몇 만 개를 사고도 남을 많은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전혀 줄겁지가 않았습니다. 돈도 있고 연도 있지만 어린 시절의 자신은 찾을 길이 없고, 그 때의 어머니 역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설령 지금 내가 나의 돈으로 한 대의 비행기를 살 수 있다 할지라도

조그마한 연 하나가 내 마음 속에 불을 질러 방분케 하던 그 시절을

어찌 되찾을 수 있으리오?

서양의 하우스먼과 동양의 오경웅 박사가 이처럼 사라져 버린 어린 시절에 대해 똑같이 탄식한 것은,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지극히 유한하고, 그 유한한 인생은 또한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가 버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이 영원하다면, 그 흐름이 멈추어져 있다면, 하우스먼도 오경웅 박사도 그처럼 한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1444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다윗은 인생을 그림자로 정의하였습니다. <탈무드>는 그의 정의에 다음과 같은 주석을 덧붙였습니다.

인생은 그림자라 경에 일렀으니, 서 있는 나무나 바위의 그림자인가? 아니다.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로다. 새가 날아간 뒤에는 새도 없고 그림자도 없느니라.”

나무나 바위의 그림자는 해가 지면 사라지지만, 나무와 바위 그 자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새의 경우는 다릅니다. 새의 그림자가 사라진 곳에는 새마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밤 사라진 나무나 바위의 그림자는 내일 아침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다시 생성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가 빛을 발해도, 이미 새가 날아가 버린 곳에서는 새의 그림자를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나무나 바위의 그림자는 아침에 뜬 해가 서산으로 지기 전까지는 그 모습을 온종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의 그림자는 새가 날아오르는 즉시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탈무드>의 지적은, 인생이란 속절없이 유한하고, 허망하게 덧없으며, 살같이 빠르기만 함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라져 버린 지난 세월을 한탄하거나 탄식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이제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분명히 짧을 것임을 또한 안타까워해서도 안 됩니다. 도리어 인생이란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임을 어느 때보다도 절감했기에, 우리들은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왜냐고요?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 속에서, 영원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나는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양의 문이라고 밝혀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인생의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문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 사람은 구주이신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입니까? 몇 주 전 설교를 통해 말씀을 드렸듯이 구원은 곧 자유입니다. 바로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 말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의로운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게 마련입니다. 죄의 삯은 피할 수 없는 사망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제물이 되어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므로 우리들에게 죽음으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빛으로 우리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사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이처럼 구원이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요,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원이란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곧 영원한 생명이기에, 영원한 생명 속에 있는 사람은 살날이 얼마 없을 경우에도 탄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 속에서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 속에서는 길이에 상관없이 모든 시간이 똑같은 영원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영원한 생명이기에, 영원한 생명을 지닌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실패에 낙담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계획이 차질을 빚을 때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원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실패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사람은 자기 계획의 열매를 이 세상이 아닌, 영원 속에서 거두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나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 당시 사람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은 처참한 실패자들이었습니다. 가진 것, 이루어 놓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이 세상 사람들이 비웃는 실패의 길을 계속 걸어갔습니다. 그들이 뿌린 씨앗의 열매는 살아생전 이 땅 위에서가 아니라 영원 속에서 반드시 거둘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 그들은 어떤 거목보다도 더 우뚝 우리들 앞에 서 있습니다. 그들을 가리켜 실패자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양처럼 더러운 악취를 풍기며, 불결하고 더럽기 짝이 없는 죄인이던 우리들이 어찌 이처럼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목자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문이 되시어 우리들을 지키고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얻은 이 구원을 확신한다면, 더 이상 지나가 버린 날들을 탄식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세월이 살 같이 빠름을 한탄해서도 안 됩니다. 또한 물질적 세속적 계산에 기인한 성공과 실패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눈을 들어 영원을 사는 사람답게 영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때에만 목전의 이득을 떠나, 영원을 위한 영원의 씨앗을 뿌릴 수 있습니다.

 

3:6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호칭은,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75년 동안 이 세상에서 살았고, 이삭은 180, 야곱은 147세가 향년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태어난 때로부터 손자 야곱이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기간을 합치면 307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호칭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30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역사하신 그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의미임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영원한 생명 속에 있음을 믿는다면, 최소한 300년 후를 내다보며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목전의 이해득실에만 그들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심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서 그들의 먼 미래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은 비로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300년 후를 내다보면서 살았던 그들이 지금, 영원하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산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면,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의 하나님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산 사람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산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구원, 영원한 자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원을 향해 눈을 뜨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 300년 후를 바라보며 행동하고 씨를 뿌리십시오. 우리들의 욕망 속에서는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안에서 영원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 산 사람의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 속에서 영원히 산 사람이 되어 영원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영원한 향한 지평을 열어가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목자 되시고 우리들의 문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 곧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다시 일깨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인생이 허망하다 탄식하지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탄치 말게 하옵소서. 영원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적어도 300년 후를 내다보며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우리들이 뿌려야할 씨앗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와 같은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바로 세워 주심을 매 순간 확인하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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