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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주님의 도구 -막달라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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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c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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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도구 -막달라 마리아

안석수 목사

*본문/ 20:1-2, 18

 

사랑하는 여러분, 인류 최고의 보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래 전 프랑스의 한 잡지사가 세계의 저명인사 100명에게 지구의 파멸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반출해야할 지구상의 보물이 무엇이냐?”는 설문 조사를 했을 때 1위를 차지한 것이 바로 토리노 성당에 보관 중인 예수님의 수의였고, 2위가 미로의 비너스상 이었습니다. 미로의 비너스상은 인간 예술의 극치로 인정받고 있는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실제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비너스상 앞에 섰을 때의 황홀감이란 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정교한 예술품을 제치고 폭 1미터5센티의 길이에 4미터 20센티에 불과한 세마포, 예수님의 시체를 샀던 삼베 수의가 어떻게 인류 최고의 보물로 간주되었을까요?

 

20:3-8이 그 까닭을 설명해 줍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은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안식 후 첫날 새벽 예수님께서 시체가 없어졌다는 여인들의 말을 들은 베드로와 또한 명의 제자인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뛰어갔을 때, 무덤 속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만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즉 미의 극치인 미로의 비너스상을 제치고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삼베의 수의가 지구상의 최고의 보물로 꼽히는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이 땅에 남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증거품으로 간주되는 까닭입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왜 이탈리아의 소방대원들이 불길에 휩싸인 토리노 대성당 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 속에 있는 명화나 조각품과 특히 금, 은으로 만들어진 호화스러운 기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이 세마포만을 목숨 걸고 반출해 내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중동 지방에서 얼마나 많은 세마포가 직조되고 통용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숱한 세마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아득한 옛날 이미 썩어 진토가 되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삼베의 역사는 매우 길어 한민족이 한반도로 이주할 때 벌써 삼베를 가지고 온 것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국지> 위지동이전 <삼국사기>를 보면 역시 삼베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역사와 더불어 지난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제조되었던 그 수많은 세마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미 썩어서 흙이 되었고, 지금 쓰레기가 되었으며, 또 앞으로 흙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유한한 인간을 위하여 사용되는 인간의 소유물은 아무리 값진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소멸되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영원한 생명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그것이 시체를 감싸는,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의미 없이 보이는 수의라 할지라도 그 영원한 가치를 결코 상실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의 세마포는 니고데모가 향품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에 감싸 드렸던 것임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니고데모가 2천 년 전 그 세마포를 자신의 수의로 삼았더라면, 그 세마포는 니고데모의 시체와 함께 벌써 흙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세마포가 영원하신 주님의 도구로 드렸을 때, 전혀 귀할 것이 없는 그 세마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제치고 지구상의 최고의 보물이 되어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 훗날 그 세마포가 완전 부식되어 그 형체가 사라져 버린다 할지라도 그 영원한 가치만은 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그것들 중 2천 년 후까지 남아 있을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지금 아무리 값진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내일의 쓰레기에 지나지 않고, 또 미래의 흙 속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이 시체를 감싸는 수의 아니 삼베조각처럼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하신 주님의 도구로 쓰인다면, 그 가치는 영원히 소멸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더 깊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들에 대해 소멸치 않는 가치를 부여하시는 분이시라면,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더더욱 존귀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본문 속의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게네사렛 평원의 남단에 위치한 막달라 즉, 농업과 어업, 제조업, 조선업이 발달한 부유한 상업중심 도시로서 도시 한가운데 커다란 원형 경기장이 있는 도시입니다. 대형 경기장을 갖춘 로마의 모든 도시들이 그러했듯이 막달라 역시 환락과 타락의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 한가운데에서 살던 마리아는 도덕적, 정신적, 영적으로 철저하게 타락한 창녀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쓸모없는 한심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좇기를 중단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 놀란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갈 때에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모친과 이모와 더불어 끝까지 그 현장을 지키고 있었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1입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 간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던 주일 이른 새벽, 아직 온천지가 어두울 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장사되신 무덤을 찾아가기까지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시간이 유월절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이었으므로,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의 장례식을 서둘러 끝내야 했기에 행여라도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이 덜 발라졌을 까 우려하여 주일 꼭두새벽부터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의 중심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초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이 중심이 귀한 까닭은 이때까지만 해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마리아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뛰어가 전한 말의 내용은 본문 2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에다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하니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예수님의 시체가 도난당한 줄로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바친 마리아의 중심은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코 흔들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막달라 마리아야말로 주어진 상황과 시간에 상관없이 자신의 전 인생을 바쳐 주님의 도구가 되기를 실천했던 진짜 제자였던 것입니다.

 

본문 18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놀랍게도 그녀는 예수님과 3년 동안이나 함께 살았던 제자들을 제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첫 번째 증인이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본래 막달라 마리아는 환락의 도시 막달라의 쓰레기 같은 하찮은 인생이었는데 그러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 인생을 주님의 도구로 바칠 때 그 삶의 가치가 얼마나 영원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증명해 준 위대한 증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더 이상 비천한 창녀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녀야말로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할 위대한 신앙의 영원한 표상인 것입니다.

 

네델란드 자유대학에서 미술사 교수로 재직했던 한스 로크마커 교수는 그의 저서 <예술은 변명을 오하지 않는다>에서 1800년경 일본의 대표적인 화가였던 호쿠사이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잘아는 사람이 호쿠사이를 찾아와 수탉을 그려 달라고 부탁하자 호쿠사이는 두 주일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두 주일 후에 그가 찾아왔을 때 호쿠사이는 약속을 2주일 더 연기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2주일 후 다시 그가 찾아왔을 때 호쿠사이는 이번에는 두 달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반년을 연기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3년이 흘러가자 그림을 부탁했던 사람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면 매우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자 호쿠사이는 알겠다며 그 자리에서 붓과 종이를 꺼내어 순식간에 수탉을 그려 주었습니다. 그것은 훌륭한 명화였습니다. 그림을 부탁했던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서 더욱 분노하면서 말했습니다. 이렇게 순식간에 그려 줄 수 있으면서 왜 3년씩이나 기다리게 했소?”

그 때 호쿠사이는 말없이 그 사람을 자신의 화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놀랍게도 그 화실의 사방 벽은 호쿠사이가 지난 3년 동안 밤낮으로 습작한 수탉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명화는 밤낮 없는 훈련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비단 예술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밤낮 없는 훈련을 배제하고서는 어떤 분야에도 참다운 프로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세계 또한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왕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을 바에야 어설픈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프로가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막달라 마리아처럼 밤낮 구별 없이 하나님께 우리의 전 인생을 드립시다. 그리고 상황을 따지지 말고 주님의 도구가 되기를 주저하지 맙시다. 그것만이 창녀 막달라 마리아같이 이 타락한 사회 속에서 별 볼일 없는 우리의 인생을, 아니 부활의 첫 증인이 된 막달라 마리아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가치 있게 세우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만약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을 위해 예비했던 새 무덤 속에 자신의 시체를 뉘었더라면, 그것은 썩은 시체의 악취만을 풍기는 더러운 무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준비했던 세마포로 자신의 수의로 삼았다면, 그 세마포는 니고데모의 시체와 함께 벌써 한줌의 흙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을 위해 살았다면, 끝내 막달라 마리아의 창녀로 그 인생이 썩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어 하나님 앞에 불러 주시고, 우리 자신의 본능과 욕망만을 위하여 사는 것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실은, 내일의 쓰레기 더미 속에 우리 자신을 방치해 두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비옵건대 주어진 상황을 따지지 말고, 우리의 삶을 주님의 도구로 드리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의 종착역이 무덤이 아니라 육체의 생사를 초월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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