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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나님의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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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Aug 29, 2018
  • 조회 1363

하나님의 손에

안석수 목사 

* 본문/ 11:19-21

 

예루살렘 북쪽 480여 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수리아의 안디옥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는 이방 세계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위대한 사도 바울을 배출함으로써, 최초 이방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감당한 교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일컬음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가 그토록 중요하고 의미 있는 교회라고 해서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본문 20 말씀입니다.

그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안디옥 교회를 세운 사람들은 놀랍게도 지중해와 섬 구브로와 북아프리카의 항구 도시 구레네에서 온, 이름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몇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직업이 의사였던 누가였습니다. 누가는 직업이 의사였기에 매사에 치밀하고 분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사도행전 본문을 기록하면서 그들이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이라는 사실만 밝힐 뿐, 그들의 이름은 끝내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당사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겸손하고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

본문 21의 말씀입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몇 사람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 교회로 인해 수많은 이방인들이 주님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안디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몇 사람은 유대인들이었고, 그 몇 명의 유대인들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이방인인 헬라인 즉, 그리스도인들이었음을 밝혀 줍니다. 그 몇 명의 유대인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유대인인 나사렛 예수가 온 인류를 구원하는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당시 지중해 세계를 석권한 로마제국에서 유대인은 지배 계층이 아니었습니다. 고작 로마제국 동쪽 끝자락의 변방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변방인에 불과한 유대인 나사렛 예수가, 경력이라고 해봐야 가난한 목수 생활이 전부인 그 유대인이 인류의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기 민족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긍지를 지닌 헬라인들이 유대인들이 언급한 그 유대인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본문 21은 그 해답이 주의 손,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밝혀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안디옥의 이방인인 헬라인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들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았던 몇 사람의 그리스도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손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으로 인해 안디옥의 이방인 가운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귀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겸손하게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그의 삶을 통해 반드시 하나님의 감동적인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80세가 되기까지 미디안 광야에서 영치기를 하면서 그에게 유일한 개인 재산이 있다면 양치기용 마른 지팡이 하나였습니다. 40년 동안 처갓집에 얹혀살았기에 모세가 지닌 모든 것은 실은 장인의 소유였습니다. 결국 그의 소유라고는 나뭇가지로 만든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초라하고 가진 것이 없는 노인 모세에게 이집트에서 노예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비록 늙어서는 마른 지팡이 하나밖에 없는 초라한 노인이었을망정 40세까지는 이집트 제국의 왕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세계 최강인 이집트 제국의 군사력이 얼마나 막강하고 가공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단 한 명의 군사나 단 한 개의 무기도 주시지 않고, 이집트 파라오와 맞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 시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마른 막대기를 들고 이집트를 향해 출발한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모세의 지팡이에 대한 명칭이 달라졌습니다.

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조금 전까지는 분명히 모세의 지팡이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집트로 출발하는 순간부터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모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지팡이는 평소 모세가 양을 칠 때 사용하던 바로 그 마른 막대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모세와 함께 하시자, 그 지팡이는 더 이상 마른 막대기가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을 때, 32킬로미터의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 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치자, 최소한 200만 명이상의 무리가 마실 수 있는 생수가 강물처럼 터졌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그 마른 막대기를 잡고 있는 모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마른 막대기야말로 바로 모세 자신이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 묻혀 80세 노인이 되기까지 양치기였던 모세는, 세상적 관점에서 본다면 마른 막대기처럼 아무 쓸모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신을 겸손하게 맡기고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혔을 때, 그는 자기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 살이에서 헤방 시키는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의 나이어린 양치기였던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스라엘 역사를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자신의 능력으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손으로 다윗을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이렇게 찬양 했습니다 139:7-10입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

하나님의 손이 아무리 자신과 함께하셔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31: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

다윗은 많은 사람들의 거짓 모함과 살해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3천 명으로 구성된 특공대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자신을 모함하고 살해하려는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에게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미래가 그의 시간이, 그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 있기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3:46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출생으로부터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시기까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사로잡혀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록 나사렛의 빈민 목수로 사셨지만,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손으로 다시 살리시고 영원한 부활의 구주로 세우심으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영원히 살 수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 주셨습니다.

49:15-16 말씀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궁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기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시려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바닥에 우리 이름을 새겨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우리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본문 속 안디옥 교회를 세운 몇 사람처럼, 모세처럼, 다윗처럼, 아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손에 사로 잡혀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우리를 세상 그 무엇이, 그 누가 흔들 수 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스페인에서 피카소가 타계하기 전에 병상에서 스케치 용지에 연필로 스케치한 그림이 수억 원에 경매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그 종이 위에 연필로 스케치한 사람이 저였다면, 그 종이들은 이미 쓰레기로 버려져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이가 위대한 화가 피카소의 손에 잡혀 있었기에 비록 작고 볼폼없는 종이지만 어엿한 예술품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이처럼 쓸모없어 보이는 종이 한 장도 누구의 손에 잡혀 있느냐에 따라 쓰레기로 버려질 수도 있고, 위대한 예술품으로 보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누구의 손에 잡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출세하고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손에 사로잡혀 사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출세하고 많은 것을 소유해도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살지 않는다면, 언젠가 썩어질 자신의 손만 의지하려 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런 인생은 쓰레기 같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 속 안디옥 교회를 세운 몇 사람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존재이십니까? 베들레헴의 나이어린 다윗처럼 매사에 미약하기만 하십니까? 보잘것없는 스케치 용지처럼 자신에 대해 아무 가치도 느낄 수 없으십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처럼, 지금 죽음의 고통 혹은 고통의 죽음 속으로 떨어지고 계십니까?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손을 이미 우리에게 내밀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과 기도 속에서 겸손하게 그 손을 잡으십시다.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사로잡혀 사십시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살기만 하면 우리의 작은 행동, 우리의 작은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손에 잡혀 사는 한, 우리는 더 이상 쓰레기 같은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걸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잘것없지만,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손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니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손에 사로잡혀 사느냐 임을 명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우리의 손만 의지하며 살아 왔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시며, 하나님의 손바닥에 우리 이름을 새겨 두셨음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손을 겸손히 붙잡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오직 말씀과 기도 속에서 청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사로잡혀 살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우리가 팔십 노인 모세의 마른 막대기처럼 볼폼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우리의 삶이, 온갖 죄악과 불의의 홍해를 가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해 주옵소서. 비록 우리가 십자가의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우리의 고통이 부활의 기쁨으로 승화되게 하옵소서. 비록 우리가 찢어진 종잇조각에 불과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예술품으로 빚어지게 해주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있느냐가 중요함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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