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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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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g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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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라

  안석수 목사 

*본문/ 1:4-8

 

모든 결과는 과정의 산물입니다. 과정 없는 결과는 그 어떤 경우에도 없습니다. 11시 이 예배 시간도 10시가 지나야 되고, 월요일이 끝나야 화요일이 시작되며, 봄이 지나야 여름이 오는 법입니다. 세상만사가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과정의 질과 수준이 고스란히 결과의 수준과 질이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과정을 중요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늘 최선의 결과를 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일월성신과 산천초목을 비롯하여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인간을 창조하시기까지의 전 과정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 년 전, 75세가 되기까지 자식을 갖지 못하던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선택하신 뒤 곧 바로 자식을 주신 것이 아니란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무려 25년 동안이나 믿음의 과정을 거치게 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을 우선 확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만 믿음의 자녀를 낳아 믿음의 자녀로 기를 수 있고, 그 믿음의 자녀로 인해 결과적으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그 믿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는 4천 년 전 바람처럼 왔다가 먼지같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고, 우리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기억해야 할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장장 25년 동안 믿음의 과정을 거치게 하신 것은 그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훈의 말씀을 본문 8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 마지막 말씀으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증인된 삶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과정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령 증인의 사람이 되려면 먼저 증인을 향한 과정에 충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마자 제자들로 하여금 먼저 갈릴리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갈릴리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직업은 어부나 세리 혹은 열심당원 등으로 다양했지만, 공통점은 갈릴리가 그들 모두에게 삶의 현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갈릴리에 태어나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생계가 갈릴리에 달려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갈릴리에 있습니다. 갈릴리를 떠나서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삶의 터전, 삶의 현장으로 제자들을 먼저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먼 곳을 찾아 가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일시적인 변신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현장 즉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 앞에서부터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마지막 장이면서 4복음서의 결론 장인 요한복음 21을 통해 제자들의 삶의 현장인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되풀이 하여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이 얼마나 중요하면 세 번이나 거듭 말씀하셨겠습니까?

제자들의 삶의 현장인 갈릴리 너의 가정에서 너의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네 아내 앞에서, 네 남편 앞에서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고 있느냐? 네 자식에게 그리스도인의 본을 보이고 있느냐? 네 부모에게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하고 있느냐? 네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다운 언행을 하고 있느냐? 그것을 삶으로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먼저 갈릴리로 돌아가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제자들이 자기 삶의 현장에서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사랑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삶의 현장으로 보내시고, 그들을 스스로 점검케 하신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말씀과 사랑으로 연결되지 아니한 것은 아무리 단단해 보여도 언젠가는 반드시 끊어지고 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삶의 현장인 갈릴리에서 자기 스스로를 점검케 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습니다.

본문 행 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증인 된 삶을 위해 무작정 떠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일깨워 줍니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란 성령강림, 곧 성령세례였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예수님께서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명하신 곳이 예루살렘이었다는 점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루살렘에서 성령강림을 기다리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제자들과 예루살렘은 불가분의 관계였습니다. 갈릴리에서 태어나 갈릴리 밖에 모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루살렘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신 곳이 예루살렘이었고, 고난과 부활의 현장 역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은 제자들에게 갈릴리 다음가는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히브리어 예루살렘의 뜻은 평화의 터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땅 끝으로 나아가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 강림을 기다리라 명하신 것은 평화의 터전을 지키면서 그곳에서 성령강림을 기다리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선교 현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님 안에서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갈릴리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셨고 본문 4에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루살렘에서 성령강림을 기다릴 것을 분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8을 통해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세 명령을 종합하면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을까요?

증인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삶의 현장인 갈릴리에서 사랑과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것으로 시작하여, 성령님 안에서 평화의 터전인 예루살렘을 거치는 과정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 현재 자기 삶의 현장에서부터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성령님 안에서 평화로 한데 묶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사랑의 가시적 종착역이 곧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현장인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성령님 안에서 평화의 터전인 예루살렘을 거치는 과정에 충실한 사람의 삶은, 결과적으로 증인의 삶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화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굳게 지키는 것입니다.

26:3 -(표준 새번역) “주님,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들은 늘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완전한 평화를 주시기 바랍니다.”

평화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흔들림 없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사람들은 평화라고 하면 흔희 황혼의 들녘이나 잔잔한 호수 위를 나는 새들을 연상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비바람이 몰려드는 즉시 깨지고 맙니다. 참된 평화의 터전은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흔들리는 만큼 평화는 깨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강림을 기다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성령님 안에 거하는 사람의 마음만 평화의 터전으로 일구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 세상 그 무엇이 빼앗거나 뒤흔들 수 있겠습니까? 이후 제자들아 평화의 사도로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 안에 거하는 그들의 마음이 어떤 인생 폭풍에도 미동조차 않는 확고한 평화의 터전으로 일구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길이요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불효한 자식도 부모의 유언 앞에서만은 진지해지는 법이거늘, 하물며 주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들이 어찌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반드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 결과를 위한 과정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삶의 현장인 갈릴리에서 아내와 남편과 부모 자식과 동료와 이웃과 진리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예루살렘을 지켜야 합니다. 즉 우리 삶의 현장을 평화의 터전으로 일구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 위에서 피투성이로 찢어졌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호흡이 멎는 순간까지 예수님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참혹한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화의 왕으로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예수님의 제자요, 그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우리에게 굳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영적으로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님께서는 내일도, 내년에도 아니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성령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평화의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굳게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향해 눈을 뜹시다. 그 성령님을 의지합시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합시다. 성령님의 빛을, 인도하심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벗어던집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한결같은 마음, 그 어떤 인생 폭풍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 마음으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부터, 우리의 혈육 가운데서부터, 벽에 단단히 박힌 못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랑과 말씀 그리고 평화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때 사람들은 과정에 충실한 우리를 가리켜 증인이라 부를 것입니다.

우리의 땅 끝은 어디일까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바로 땅 끝입니다. 선교의 시작은 우리의 일터 그리고 우리의 집 안방에서 시작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과정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없고, 과정의 질과 수준이 결과의 질과 수준을 결정함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삶의 현장인 갈릴리에서부터, 내 혈육 가운데서부터,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현장을 평화의 터전, 예루살렘으로 일구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 성령님을 우리 생의 주인으로 모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시고, 부족함을 채워 주시며, 견고한 마음을 허락해 주십시오. 성령님 안에서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우리 집, 우리의 교회에서부터 진리와 사랑, 평화의 사람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날마다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과정을 충실하게 거치도록 성령님 빛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일터 우리의 집 우리의 교회가 땅 끝의 출발점인 동시에 종착점임을 우리의 삶으로 증거 하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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