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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전능의 하나님을 선포하라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Mar 30, 2018
  • 조회 6768

전능의 하나님을 선포하라

 안석수목사

*본문/ 1:20-21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귀환했습니다.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를 많은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자신을 반기는 고향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는 자신을 나의 즐거움이란 뜻을 지닌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괴로움이란 뜻의 마라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형편이 여호와의 징벌로 괴롭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이 고백 속에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번에 걸쳐 반복되는 전능자란 단어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전능자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전능자는 원어로 샤다이인데, ‘샤다이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에 창세기 171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99세 된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셔서 예전에 주신 약속, 즉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확증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에 대한 확증의 말씀을 주시면서 자신을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의 아브라함과 사라의 상황을 로마서 419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 절대로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대로 불가능한 상태에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첫 고백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이었습니다.

 

나오미의 입술에서 엘 샤다이가 선포된 것이 왜 의미가 있을까요? 나오미는 지금 모압에서 돌아와 베들레헴에 도착함으로써 회복의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엘 샤다이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나오미의 처해진 상황을 보면 변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압에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어려운 사정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경험이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다니고, 특별집회에 참석하고, 주일예배도 열심히 드려서 은혜 받고 회개하고 영적으로 완전히 회복되었다 할지라도, 집에 돌아와 정신 차리고 보면 바뀐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뭐가 달라졌단 말입니까?

나오미의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비장한 각오와 발빠른 결단으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변한 것이 없고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전혀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끼니가 걱정되고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나오미가 가장 먼저 선포한 것이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들도 살아가다 보면 영적으로 충만해졌을지 몰라도 현실은 여전히 실패한 인생이고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들 입술로 먼저 선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베푸시는가를 보고 난 이후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외쳐야 합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귀환하고 회복의 첫걸음을 시작한 직후 첫 번째 고백으로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선포한 것처럼 말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입술에서 선포된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고백이 갖는 또 한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나오미는 인생의 놀라운 변화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 나오미의 상황이 어떠합니까? 가장의 실수와 착오로 가정이 완전히 몰락했습니다. 남편도 죽고, 두 아들마저 죽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이 가정을 향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반전의 놀라운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해야 합니다.

만약 엘리멜렉이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현실 도피하고 궤도 이탈하여 모압으로 가지 않았다면 룻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 계보를 통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실 수 있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놓고 보면 엘리멜렉의 치명적 실수가 오히려 다윗의 계보를 연결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는 놀라운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의 관문, 그 첫 시작이 바로 나오미가 외쳤던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들이 할 일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역사의 관문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문이 바뀌고, 우리의 교회가 바뀌고, 우리의 인생이 바뀌는 그 관문 앞에서 먼저 엘 샤다이를 선포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될 때 앞으로 5년 뒤, 10년 뒤, 20년 뒤에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십시다. 그때 우리는 정말 놀랍게 역사하시는 대반전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유명한 조직신학자인 미국 칼빈신학교의 루이스 벌코프 교수는 엘 샤다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입니다.

엘 샤다이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뜻만은 아니다. 엘 샤다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다 그분의 주권 가운데 있다. 창조와 보전이, 선택과 혹은 유기가, 만물의 운행과 통치가 엘 샤다이 그분의 품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우리 인식 속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면 엘 샤다이이고,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느라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시면 사라져버리고 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베푸시는 것만이 엘 샤다이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 우리 한계 안에 가두어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깨뜨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21에 디베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베드로의 일행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는 직업이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 어부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는데도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프로 어부의 손에 물고기가 잡히는 것이 기적일까요? 아니면 밤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것이 기적일까요?

베드로는 그날 밤, 밤새 그물질을 하면서 전문 직업인으로서 깊은 절망과 무력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그 절망의 밤은 다음날 그의 생애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벅찬 만남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날 밤 베드로가 만선의 포만감에 사로잡혀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면 다음 날 하루 종일 기뻤을지 몰라도 평생의 기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벅찬 만남은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을 만난 것도 엘 샤다이의 역사이지만 밤새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던 것도 엘 샤다이의 역사인 것을 우리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밤새 베드로가 던지는 그물 주변에서 물고기를 쫓아내시는 하나님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면 우습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밤새도록 우리 인생의 물고기를 쫓아내시는 하나님도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이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물고기를 쫓아내셔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며, 우리 삶에 물고기가 마구 몰려와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전체를 바라보는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환경은 전혀 바뀐 것 없는 중에도 엘 샤다이를 선포한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상황과 상관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먼저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역개정성경에서 전능자란 단어를 찾아보면 전능자란 단어가 모두 48번 나오는데, 성경 66권 가운데 이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놀랍게도 욥기라는 것입니다. 전능자가 성경에 등장하는 48번 가운데 무려 31번이 욥기에 나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 인생의 고통의 터널을 지나갈 때, 고난의 험준한 길을 만날 때가 바로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 찾아오시는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라는 것입니다. 보릿고개가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때, 우리 선조 어른들의 믿음이 우리보다 훨씬 더 굳건하고 생생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이 물고기가 몰려오는 것이 아닌 인생의 물고기를 쫓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때라면, 나오미나 욥이 그랬던 것처럼, 바로 지금이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를 만날 기회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영안입니다. 우리 모두 영안이 열려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살아가다보면 영적으로 충만해졌을지라도 현실은 여전히 실패이고 회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절망적이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 입으로 먼저 선포하게 하옵소서. 우리 삶에서 물고기를 쫓아내셔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요, 우리 삶에서 물고기가 마구 몰려와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게 해 주심과 우리 인생의 물고기를 쫓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을 때에 나오미와 욥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기회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 모두 영안이 열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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