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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Jan 30, 2018
  • 조회 8766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

  안석수

*본문/ 12:1-5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즐겨 암송하는 성구가 무엇일까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말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성구를 좋아하면서도 좋아하는 만큼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성구는 흔히 생각하듯이, 내게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빌립보 411절과 12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새번역 성경입니다.

시도 바울은 주님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 누구보다도 많은 박해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되는대로 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상상할 수 없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은 배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배우려는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이 세상그 누구, 그 무엇 하나 스승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을 맞든, 항상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모든 죄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으로부터 잉태됨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배우다의 의미는 단순한 배움이 아니라 배워서 습관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헬라어 동사 만다노’)

바울은 어떤 상황을 맞든 항상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되, 그것이 습관이 되게끔 그 배움을 반복하여 몸에 익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풍족한 여건 속에서도, 교만에 빠지지 않고, 비천에 처할 때에도, 비굴해지지 않는 비결을 배웠음을, 다시 말해 어떤 상황 속에서든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음을 다시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이 배운 것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바울은 어떤 상황이든 주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여야함을 배웠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한 비록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일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 속에서는 반드시 주님의 귀한 뜻이 있고, 또 그 결과는 반드시 선으로 귀결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네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구는,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 속에서 인간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전기 작가로 유명한 존 폴락은 그가 쓴 <사도 바울>에서 이 성구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분의 능력으로 나는 무슨 일이든 겪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능력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의 능력 속에서는 어떤 상황이든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겪을 수 있음을 다시 말해 받아들일 수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귀한 뜻이 이루어지고, 또 그 모든 상황은 반드시 선으로 귀결됨을 그가 삶으로 배우고 몸에 익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을 위해 참수형마저 기꺼이 받을 들일 수 있엇고, 주님께서 그를 도구로 삼아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사도 야고보가 참수형을 당하고 베드로가 참수형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 속에서 교회가, 다시 말해 교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교인들은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교인들이 드린 기도의 내용이 과연 무엇이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죽음에 직면한 베드로를 살려 주시기를 기도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를 이루고 있던 교인들은 자신들을 배교자로 간주하는 유대교인들의 박해 속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걸고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소유를 내어놓고 모두 함께 사용하는 유무상통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주님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진짜 예수쟁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죽음에 직면한 베드로를 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면서도 실제로 베드로가 살아오리라고는 믿지 않는 불신의 기도를 드렸다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죽음에 직면한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한 기도의 내용은 관연 무엇이었으며,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그들이 베드로가 살아왔다는 소녀의 말을 믿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베드로가 처음으로 투옥당한 것은 사도행전 4에서의 일입니다. 베들와 요한이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선천성 하반신 불구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서게 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다는 의유로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해 투옥되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 이튿날,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의 이름을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위협하여 그들을 풀어 주엇습니다. 그들은 풀려난 즉시로 동료 교인들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사도들과 교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4:29-31 말씀입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가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사도들과 교인들의 간구한 기도의 요지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자신들에 대한 박해자들의 위협을 굽어살펴 달라는 것이요, 둘재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요,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며 표적과 기사를 나타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 속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투옥 시킨 유대교 지도자들이 이튿날 두 사도를 풀어 주기 직전에 다시는 예수의 이름을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두 사도를 위협했을 때, 두 사도는 추호의 굽힘도 없이 오히려 이렇게 맞섰습니다. 4:19-20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화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박해자의 위협 속에 살아가야만 했던 그들은 박해자들의 위협을 피하게 해달라고, 더 이상 위협이 없는 편안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결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온갖 위협이 있을지라도, 그 위협 속에 있는 자신들을 굽어 살피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님의 참된 증인으로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 속에서 주님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 기도드린 것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참된 삶이요, 영원한 삶임을 주님 안에셔 배우고 몸에 익힌 결과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내 안에 거하시는 분의 능력으로 나는 무슨 일일이든 겪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과 아무런 차이가 없고 주님께서 그들을 통해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신 것, 역시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교인들의 기도의 핵심이 무엇인지 확인하면 우리는 이제, 죽음에 직면한 베드로를 위해 본문의 교인들이 하나님께 간구한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죽음에 직면한 베드로를 살려 주기를 간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그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이미 얻은 주님의 증인다울 수가 있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베드로가 참수형을 당해야 하는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철통같은 감옥으로부터 살아 돌아왔을 때, 그들이 그 사실을 선뜻 믿지 못했던 이유였습니다.

베드로 역시 야고보처럼 참수형을 당해야 하는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참수형을 당하기 전날 밤에도 그가 감방 속에서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위해 참수형을 당할망정, 자신이 믿는 주님께서 주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자신을 영원히 책임져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이라 하면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뿐만 아니라 반드시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을 포함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우리의 삶은 구름 위에서가 아니라 주어진 현실의 상황 속에서 엮어지기 때문입니다.

 

375-6의 말씀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라.

우리가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의 의와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게서 부신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때에만 바로 그 상황 속에서 그 상황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듯을 이루는 우리의 삶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계십니까? 그 상황이 혹 괴롭고 고통스러우십니까? 그럴지라도 그 상황을 피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주신 것은 그 상황을 피하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를 새롭게 빚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직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몸에 익힙시다. 또 그 상황 속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 위해 기도하십시다.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드러낼 수 있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새로운 의미와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 상황을 주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와는 전혀 다른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도 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본문의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모든 상황을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바울처럼 풍부에 처할 때나 궁핍에 처할 때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 안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이 주어졌든, 주님 안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고 몸에 익히게 해 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 삶 속에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바울과 베드로처럼,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기도를 통해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의 의와 공의가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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