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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여호와를 기뻐하라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Jan 30, 2018
  • 조회 8005

여호와를 기뻐하라

  안석수

* 본문/ 12:1-4 , 37:4

 

사복음서에 나오는 이방 혈통인 헤롯 왕은그의 집권 기간 내내 소위 체찍과 당근 정책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로마제국의 신임을 잃지 않기 위해 유대인들로부터 혈세를 짜내어 로마제국에 상납하면서, 자기 왕권에 대한 유대인의 도전은 가차 없이 제압하는 철권통치를 행하였습니다. 헤롯 왕은 자신의 혈통이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언젠가 유대인에 의해 자신의 왕위가 도전당할 것을 가장 두려워했고, 그것이 두려운 만큼 항상 강압적인 채찍 정책을 써야만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예루살렘성전 공사였습니다.

본래 예루살렘성전은 주전 1천 년경 솔로몬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루살렘성전을 솔로몬성전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성전은 주전 586, 유대 왕국을 멸망시킨 바벨로니아 제국에 의해 폐허화 되고 말았습니다. 그 뒤 주전 536년부터 스룹바벨의 주도하에 성전 재건축 공사가 시작되어, 주전 516년에 성전 재건 공사가 완공되었습니다. 그 재건된 성전을 가리켜 사람들은 제2성전 혹은 재건 공사를 주도한 스룹바벨의 이름을 붙여 스룹바벨성전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두메인이었던 헤롯 왕이 유대인의 왕좌에 앉던 주전 37년은, 2성전이 재건 된지 약 500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다시 말해 제2성전은 약 500년 동안 극히 퇴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에 헤롯 왕은 대규모의 성전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주전 20년에 시작한 공사가 그가 죽고 난 후 주후 63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습니다. 무려 83년에 걸친 대공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성전을 제3성전 또는 헤롯 성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헤롯 성전 역시 완공 후 7년 만에 로마제국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초토화 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헤롯 왕이 그토록 엄청난 성전 확장 공사를 시작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남다른 경외심의 발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그가 그 엄청난 성전 확장 공사를 벌이면서까지 기뻐했던 것은 하나님도, 유대인도 아닌, 자신의 권력과 옥좌였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본문을 보면 그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헤롯 아그립바는 무교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인파를 보면서, 그 역시 반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정통 유대인이 아닌 만큼 거대한 유대인 관중이 한 자리에 모이면, 이방인인 자신에 대한 정치적 반란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헤롯 아그립바로서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민란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무교절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필요에 대한 충족이 야고보 사도에 대한 참수형으로 나타났습니다.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증언함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눈엣가시처럼 간주하는 그리스도인, 그것도 교회의 지도자인 사도의 목을 침으로써 유대인들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계산은 정확하게 적중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한 헤롯 아그립바는 사도들의 우무머리 격이었던 베드로마저 투옥시켰습니다. 내친김에 베드로까지 죽여 유대인들의 마음을 더욱 확실하게 사로잡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헤롯 아그립바가 기뻐했던 것은, 야고보 사도가 참수형에 처해진 것을 기뻐하는 유대인의 기쁨이 아니라 그가 기뻐했던 것은 오직 자신의 권력, 다시 말해 자기 욕망이었습니다. 자기 욕망만이 자기 기쁨의 근원이요 동기요, 대상이었기에, 진리라든가 정의와는 애당초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욕망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죄 없는 사람의 목을 치고 투옥시키는 것을 위시하여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행할 수 있었고 또 자기 기쁨의 논리로 자신의 행위를 얼마든지 합리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기쁨에 사로잡힌 그는 선과 악, 의와 불의조차 분간치 못하는 우둔한 인간이었습니다.

 

324말씀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분은장사꾼이 근본적으로 기뻐하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돈입니다. 술꾼과 도박꾼이 기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술꾼은 술을 도박꾼은 도박을 기뻐합니다. 그렇다면 왜 장사꾼은 돈을, 술꾼은 술을, 도박꾼은 도박을 기뻐할까요? 장사꾼은 돈을, 술꾼은 술을, 도박꾼은 도박을 삶의 목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삶의 목적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장사꾼은 자신이 얼마나 바르게 돈을 벌었는지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무슨 수르 쓰든 긁어모은 돈 자체를 기뻐합니다. 그의 목적은 돈이기 때문입니다. 술꾼과 도박꾼은 바른 삶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속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에게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술을 마시고 도박하기를 기뻐합니다. 술과 도박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헤롯가의 사람들과 빌라도 총독은 진리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자신의 권력 지키기만을 기뻐했습니다. 권력에 대한 자기 욕망만이 그들의 삶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무엇을 기뻐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사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8:29에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자신이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 때문이라고 친히 밝히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께서 오직 하나님만을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1:10 말씀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 이외의 것을 주님보다 더 기뻐하는 삶을 살았다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단언하였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이었기에,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삶으로 일관할 수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지 돈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돈에 걸신들린 거지로 오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돈 자체를 필요로 하시거나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돈 자체를 기뻐하신다면 우리를 제처 놓으시고 이 세상의 재벌들만 상대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거늘, 왜 하나님께서 구태여 우리의 돈 그 자체를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 주머니 속의 돈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르고 선한 양심으로 번 돈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그 돈을 바르게 쓸 줄 아는 우리의 중심임을 이 시간 명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더 높은 직책을 맡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직책 그 자체를 기뻐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주만물 가운데 가장 높으신 분인 바에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직책을 얻는다 한들, 그 직책 자체가 어찌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직책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직책에서든 하나님의 신실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임을 꼭 기억 허시기를 바랍니다.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들이 아니라.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우리 삶의 목적으로 삼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우리 삶의 목적으로 삼을 때에만 사도 야고보와 베드로처럼 그리고 바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와 생명과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야고보와 베드로, 그리고 바울이 본래부터 하나님을 기뻐했던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와 베드로는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자 하나님과 3년 동안 살면서도, 오히려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더 기뻐했습니다. 바울 역시 자기 신념을 더 기뻐하던 인간이었습니다. 자기 욕망, 다시 말해 자신을 더 기뻐한다는 관점에서 그들은 헤롯가의 사람들이나 빌라도 총독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헤롯가의 사람들이나 빌라도 총독과는 달리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야고보와 베드로 그리고 바울에게 임하셨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임해 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이미 선물로 주셨으므로 우리가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2천 년 전 유대 땅의 나사렛 예수님을 우리의 구제주로 믿게 되었고, 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야고보와 베드로 그리고 바울처럼 말씀과 기도 속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나 죽으나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우리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빛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우리 삶의 목적으로 삼을 때에만, 베드로가 참수형을 당하기 전날 밤 감옥 속에서 평안히 잠을 잤던 것처럼, 우리 역시 어떤 상황 속에서든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처럼 보잘것없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임해 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헤롯 대왕은 예루살렘 성전 확장 공사를 시작했고, 헤롯 아그립바는 자기 할아버지가 시작한 그 공사를 계속 했고,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과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그들에게는 임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권력, 자기 욕망,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기뻐하느라 어린아이들을 학살하고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고, 야고보에게 참수형을 내리고 베드로까지 투옥시키면서, 스스로 자기 인생을 망치는 우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임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말씀과 기도 속에서 성령님께 이끌리어 살면서,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우리 삶의 목적으로 삼는 이 시대의 야고보와 베드로 그리고 바울이 되게 해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우리 자신이 어떤 상황 속에서든 성령님의 빛 속에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리며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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