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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손이 짧어졌느냐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Aug 14, 2019
  • 조회 19

여호와의 손이 짧어졌느냐

안석수 목사

*본문/ 민수기 11: 20-23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어 출애굽한 것은, 그들의 의지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하나님의 도구 삼아 그들을 해방시켜 주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모세의 나이가 팔십 세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때 비로소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1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이스라엘 노예의 수를 억제하기 위해, 이스라엘 노예가 사내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시작됩니다. 출애굽기 2은 노예가 낳은 한 사내아이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 사내아이를 낳은 어미는 파라오의 명령을 어기고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겨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어미는 갈대상자에 아이를 넣어 나일강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마침 나일강에 목욕하러 나온 이집트의 공주가 그 갈대상자를 발견하고, 그 속에 갓난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아이가 노예의 아들임을 알고도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 덕분에 죽어야할 사내아이는 죽임을 면하고 오히려 왕자의 신분으로 왕궁에서 40년 동안 제왕 교육을 받으며 지도자의 자질을 배양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하나님께서 80년 후에 출애굽의 도구로 사용하신 모세였습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기 80년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해 그렇듯 치밀하고도 기가 막히게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그 후손들이 400년 동안 이집트의 노예살이를 거치게 될 것임을 미리 예고하셨습니다.

노예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가장 밑바닥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가장 밑바닥 인생에서부터 강인하게 훈련시키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400년이 이르기 80년 전에 모세를 태어나게 하시고, 출생과 동시에 죽어야할 모세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리심으로, 그때부터 벌써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한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섭리를 펼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두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내 몸 속을 내가 들여다 볼 수 없고, 종이 한 장 너머도 볼 수 없으면, 우주처럼 크거나 세균처럼 작은 것도 볼 수 없고, 태양처럼 눈부신 것과 칠흑같은 어둠도 보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보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를 어찌 인간이 보고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게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불신의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앞길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친히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먼저 인도하여 가신 곳은 홍해였습니다. 그때 마음이 돌변한 파라오가 이집트의 전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백성을 추격해 왔습니다. 32킬로미터의 홍해를 앞에 두고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죽었다고, 모두 모세를 원망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폭 32킬로미터의 홍해를 가르시고 그 가운데 마른 땅을 드러나게 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위험한 홍해 앞으로 인도해 가셨던 것은, 그들의 눈앞에서 그 거대한 홍해를 가르심으로, 그 거대한 바다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인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 양식이 떨어지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고, 마실 물이 없을 때는 반석에서 강을 터지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과 땅도 하나님의 주관아래에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가신 홍해와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친히 가르쳐 주신 신앙 교육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할 일은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땅 가나안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언행은 믿음과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시내 광야 디베랴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이제 질려서 만나를 먹지 못하겠다고 왜 고기를 주지 않느냐고, 차라리 이집트 생활이 나았다고 출애굽한 것을 후회하면서, 한 목소리로 원망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죽지 못해 겨우 연명한 노예였음을 이미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태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었더니, 도리어 보따리 내어놓으라고 욱박지르는 것과 같은 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11:18-20)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 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모세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60만 가구에 속한, 최소 240만 명에서 최대 3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번 고기를 주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한 달 동안 신물이 나기까지 계속하여 먹이시겠다고 하시니, 도대채 얼마나 많은 소와 양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하나님께 되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시 대답하셨습니다. 본문 23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문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무슨 의미일까요? 여호와의 손이 모세 네 손처럼 짧아졌느냐?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의 손이, 인간 모세 네 손처럼 한계를 지니고 있느냐? 모세 네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도 불가능하겠느냐? 이런 의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바람을 일으키셔서,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들을 몰아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에 소낙비처럼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메추라기들이 떨어졌던지, 동서남북 사방으로 하룻길의 길이에 두 규빗의 높이로 메추라기들이 쌓였습니다. 당시 도보로 하룻길은 약 30킬로미터였고 두 규빗은 약 90센티 높이였습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메추라기 천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배불리 먹고도 남는 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전혀 짧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출애굽1세대는 그 죽음의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고기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당장 보이지 않으면 으레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손은, 자신들의 손처럼 짧기만 했습니다. 자신들의 손과 하나님의 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고대광실에서 매일 진수성찬을 먹고 살았던 것처럼, 걸핏하면 이집트로 되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집트로 되돌아간다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참혹한 노예살이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거친광야에서 죽음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출애굽의 기쁨을 누리고서도 하나님의 손을 자신들의 손 정도로만 여겼던 그들에게 영영 새날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만 광야를 거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도 인생이란 광야를 살아가는 나그네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어떤 문제든, 문제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그 어떤 문제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인생 광야에서 수많은 문제들과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광야의 도전을 극복해야 하고,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터널도 지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이 광야로 이끄시고, 이 광야너머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이 광야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집착한다면, 우리는 출애굽1세대처럼 매일 동트는 아침을 맞으면서도 과거에 얽매인 무의미한 묵은 날만을 무한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세처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긴다면, 우리의 인생길이 아무것도 없는 죽음의 광야이기에, 우리는 이 죽음의 광야 속에서 더욱 눈부신 새날을 매일 맞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죽음의 광야가 우리를 삼키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켜 주실 뿐 아니라 죽음의 광야 너머 가나안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긴 손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손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손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이 세상 그 어떤 비단결보다 더 부드러운 손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그 손바닥에 우리의 이름을 새겨 두신 섬세한 사랑의 손이십니다. 그 사랑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손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가다듬어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손이, 우리가 거쳐야 할 죽음의 광야를, 가나안을 향한 소망의 길로 일구어 주실 것입니다. 모세에게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고 반문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사야서 4110의 말씀으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멘

 

祈禱)

하나님 아버지, 천지를 창조하신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단 한순간도 잊지 말게 하시고 세상의 풍파와 유혹, 그리고 우리 마음속으로부터 불평과 원망이 우리를 집어삼키려 할 때, 세상과 우리 자신을 향해,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고 소리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죽음과 같은 광야 길이, 가나안을 향한 소망의 길로 바꾸어지게 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매일이 새날 새시간으로 엮어지게 하옵소서. 그와 같은 우리의 삶으로 인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와 이 사회가 날로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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