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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레마의 말씀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Mar 30, 2018
  • 조회 6847

레마의 말씀

 안석수목사

*본문/ 10:19-23

 

오래전에 TV에서 방영한 <인체의 신비>란 특선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위가 얼마나 신비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위의 작용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밝혀 주기 위해 제작된 그 프로그램은, 해설자가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은 위 속에서 분비되는 위액에 의해 분해됩니다. 그런데 쇠고기의 질긴 심줄까지도 완벽하게 분해하는 위액이 어떻게 위장 자체는 분해시키지 못할까요?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질문이었습니다. 쇠고기의 심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보다 질긴 마른 오징어까지도 완벽하게 분해하는 위액이 어떻게 그것보다 훨씬 연한 위장 자체는 분해시키지 못할까요?

인간의 위벽에는 점액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데, 그 점액선으로부터 분비되는 점액이 위벽을 감사는 점막을 형성하여 그 점막이 위액으로부터 위벽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보호막이 된다고 합니다. 그 점막 덕분에 위 속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분해시키는 위액이 위 자체에는 그 어떤 손상도 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위장 속에서는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그와 같은 경이로운 작용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창조의 손길입니까? 저는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해설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오면서 살아남기 위한 세포의 운동력이 얼마나 왕성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해설자가 사용한 진화라는 한마디를 통해 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의 신념이 무엇이며, 그들의 삶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들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진화란 말이 그 말을 사용한 사람들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은 보이지 않는 것, 숨겨져 있는 것까지도 들추어내는 이며, 현미경인 동시에 확대경이란 이어령 교수의 견해는 탁월한 식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도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필요한 단어를 선택하여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무렇게나 말씀 하실 까닭이 없습니다. 가장 적절한 단어를 통해 말씀하심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한 단어 한 단어를 깊이 묵상하며 음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모든 단어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동자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현미경인 동시에 확대경이기 때문입니다.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가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에게 세 사람을 보내었고, 밤을 새워 베드로를 찾아간 그들은 이튿날 낮 12시가 되어서야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베드로에게 자신들을 보낸 고넬료를 본문 22에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그 내용은 고넬료가 식민지 주둔 장교이면서도 다른 군인들과 달리 의로운 사람이고, 이방인이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사람이요, 지배자 계급에 속해 있으면서도 피지배 민족인 온 유대 족속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고 뿐만 아니라 거룩한 천사의 음성을 직접 들을 만큼 신령한 사람 즉, 한 마디로 고넬료는 하나님과 사람의 인정을 동시에 받는 훌륭한 인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한 이유입니다. 본문 22의 말씀 속에서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한 이유는 말을 듣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체포한 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빌라도 총독에게 끌고 갔을 때 일입니다. 빌라도 총독은 고발자들로부터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말을 듣자, 마침 그때 예루살렘에 와 있던 갈릴리 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게 예수님을 보내어 심문하게 했습니다.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이 자기에게 끌려 왔다는 보고를 받고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기뻐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당시 온갖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퍼져 있었으므로, 예수님을 직접 만나 예수님이 지닌 신통술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픈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롯 안티파스 앞에 서신 예수님께서는 그가 기대하던 그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실망한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마음껏 희롱한 뒤에 빌라도에게 다시 되돌려 보내어 버렸습니다. 만약 헤롯 안티파스가 겸손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했다면, 그가 아무리 포악한 인간이었다 해도 그는 구원의 기쁨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서도 구원과는 동떨어진 어리석은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래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환상 속에서 천사를 통해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 내용은 5-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말을 듣기 위해 베드로를 청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베드로를 청하라고만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고넬료 역시 헤롯 안티파스처럼, 중풍변자 애니아를 일으키고 죽은 다비다를 살리는 사도 베드로를 인간적인 호기심으로, 그리고 그의 신통술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청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헤롯 안티파스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베드로로부터 말을 듣기 위하여 베드로를 청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6에 의하면, 당시 유대 총독이던 베스도가 헤롯 대왕의 증손자이던 아그립바 왕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을 불러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자기변명을 직접 듣어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침없이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26:24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바울의 말을 들은 베스도 총독은 바울을 아예 정신병자로 단정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말을 분명히 직접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사도 바울의 말을 귀로만 들었을 뿐, 그 말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역시 가장 위대한 전도자의 말을 듣고서도 스스로 구원을 내팽개치는 무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그들과 달랐습니다. 그넬료는 그저 베드로의 말을 한 번 들어 보기 위해 베드로를 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레마의 말씀이었습니다. 레마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헬라어로 로고스라고 합니다. 그러나 로고서는 인간의 믿음을 요구합니다. 아무리 로고스가 주어져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로고스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황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로고스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베스도와 아그립바는 위대한 사도 바울로부터 직접 로고스를 들었지만, 그러나 로고스를 믿지 않았을 때 그들에게 로고스는 조롱의 대상이요, 미친 사람의 정신 나간 소리요, 광신도의 구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그 말씀이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 레마가 될 때, 로고스는 자신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로부터 베드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드로로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레마를 듣기 원했습니다. 고넬료가 레마를 듣기 원했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만 듣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레마가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할 수 있게끔 자신의 삶으로 듣겠다는 결단의 표시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처지와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의 살길은 오직,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만 있음을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변하여 간다해도, 이 세상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언제나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육체의 떡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지금부터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레마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 레마가 되게 하십시다. 그 말씀의 눈을, 나를 알고 하나님을 나는 현미경과 확대경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 말씀의 눈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그 일에 우리의 신명을 바칩시다. 그때 우리를 통해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2천 년 전 하나님의 레마 위에 자신의 인생을 세운 고넬료가 이 성경을 통해서 살아 있듯이, 우리의 인생 역시 레마 위에서 영원한 집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레마만이 우리의 참된 미래요 희망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셨음에도, 우리가 그 말씀을 듣지는 않았습니다. 설령 듣는다 해도 단지 귀로만 들었을뿐, 우리의 삶으로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이 미련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레마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 말씀의 눈으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과 삶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인생 역시 고넬료처럼 하나님의 레마 위에 영원히 새워지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레마 속에만 우리의 참된 미래와 희망이 있음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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