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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속에서 담대하라

  • 총회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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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g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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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속에서 담대하라

안석수 목사

*본문/ 23:11

 

영적 성숙은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시간의 길이와 정비례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전폭적으로 맡기는 침묵을 통해, 하나님에 의해 자신이 비워지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움을 받음으로 자기 성장, 자기 성숙, 자기 극복이 수반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입을 다물고 우리 자신을 비추면,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와 마음 속 생각까지 찔러 쪼개어 우리를 벌거벗기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입 다물고 그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었다고 하십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늘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불평과 불만 속에 살아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 본문 말씀의 거울 앞에 입 다물고 자신을 비춘다면,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감방 속의 바울보다 훨씬 더 나은 형편에 있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아무리 주어도 불평과 불만 속에 살아가는 그의 그릇된 삶을 일깨워 교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일 것입니다.

반대로 바울처럼 신앙 양심을 따라 살려다 심하게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오늘 본문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자신을 격려 하시며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차디찬 감방 속의 바울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감방 속에서 바울과 함께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 하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바울에게 로마군의 요새 속에서, 자신의 최종 목표지가 로마임을 알려 주신 주님의 그 말씀을 곱씹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그날 밤 바울이 그 차디찬 감방 속에서 이미 일러 주셨던 말씀을 제쳐 놓고 절망에 사로잡혀 무작정 주님의 음성만 들으려고 했다면, 바울 역시 필경 헛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날 밤 감방 속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 가장 먼저 주신 말씀은 담대 하라였습니다. 용기를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로마군 요새의 감방 속에 홀로 감힌 바울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용기를 지니고 담대해야 함은 더없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감방 속에 갇힌 바울에게 담대 하라고 말씀 하실 것이 아니라 , 아예 그가 감방에 갇히지 않게 해 주시는 것이 훨씬 다 좋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바울이 로마군 요새의 감방에 갇히지 않고는, 로마에서도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새로운 미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루살렘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한유대인들이 40여 명이나 있었습니다. 만약 그날 밤에 바울이 예루살렘의 어느 민가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면, 그는 그날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그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날 밤,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는 무장한 로마군이 지키는 로마군 요새의 감방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군의 호위 속에서 압송되어야만, 유대인들의 온갖 살해의 위험 속에서도, 로마에 무사하게 이룰 수 있었습니다.

 

16:32-33 말씀입니다.

보라 너희가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룰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왓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십자가 죽음의 고난을 앞에 두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큰 소리 치던 제자들은 막상 예수님께서 사로잡히시자 저마다 혼비백산하여 예수님을 버리고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혼자가 아님을 아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결코 짧지 않는 손으로 예수님을 붙들고 계심을 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담대하게 십자가 죽음의 고난에 기꺼이 자신을 던지신 것은, 그것이 인간을 영원히 살리는, 새로운 미레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해도, 세상을 이기신 주님 안에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세상의 어둠과 싸우는 환난이 있는 것으, 바로 그것이 새로운 미래를 향한 징검다리이기 때문입니다.

 

2016코파 아메리카결승전에서 전 대회에 이어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맞붙었습니다. 전후반 90, 연장 20, 120분간의 혈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영 팀은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리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첫 번째 키커로 나선, 아르헨티나가 낳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메시가 실축함으로, 설욕을 바라던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42로 분패하고 말았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눈물을 흘리던 메시의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현역시절 조국에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안겼던 펠레와 마라도나와는 달리 월드컵에서 준우승 한 번과 세 번에 걸친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나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이제 끝났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챔피언이 되지 못해 가슴 아프다. 이제는 끝났다. 모두를 위해서다. 나는 할 수 없다.

그날 29세의 메시는 눈물을 흘리며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 이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을 필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호소에 나섰습니다. 그중에서도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메시에게 보낸 편지가 인터넷을 통해 세계인을 감동시켰습니다.

 

리오넬 메시에게,

대표팀 은퇴는, 당신을 깎아 내리는 사람들에게 구록하는 것입니다. 승리에만 가치를 두고, 패배를 통한 성장을 모시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당신이 넘어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기는 것만이 우선이고, 유일한 기회라는 서례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인생의 목적을 내 재능으로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ㅇ어려서부터 희귀병을 앓은 당신이, 어떻게 고통을 끄복하며 성장했는지를 보아 왔습니다. 지금 당신이 은퇴하면, 이 나라의 아이들은 당신에게서 배웠던 노력의 가치를 더 이상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당신처럼, 졌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한다면, 오늘도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당신을 이야기 할 때, 당신이 얼마나 멋지게 축구를 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단 한 골을 넣기 위해, 당신이 같은 장면을 수천 번이나 연습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제발 우리 아이들에게 2등은 패배라고, 경기에서 지는 것이 영광을 잃게 되는 일이라는 선레를 남기지 말아 주세요. 진정한 영웅은 패했을 때 포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영웅이라면 이길 때는 같이 이기고, 질 때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진리를 알려줘야 합니다. 결과와 관계없이 사랑하는 일을 하며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위대한 우승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세요.

 

이런 감동적인 글을 쓴 초등학교 여교사는 인생을 달관한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제 29세에 불과한 메시가 2년 후의 월드컵과 4년 후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재출전하여 또다시 우승에 좌절한다 해도, 그는 그 자체로 펠레나 마라도나와는 달리 전혀 새로운 차원의 전설로 남을 것입니다. 전 세계인들이 메시를 통하여 결코 좌절하지 않는 인생의 아름다움과 1등을 넘어서는 2등의 절대가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그 새로운 미래를 위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 담대하게 복귀할 이유와 당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패배한 축국선수도 어떤 징검다리로 발을 내딛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차원의 미래를 일구어 갈 수 있다면, 하물며 짧지 않는 하나님의 손안에 붙들려 사는 우리들은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 근래에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져 무기력한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슴입니다. 예레미야 2911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 예레미야 2911의 말씀이 얼마나 저를 담대하게 붙들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은, 오늘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새로운 미래를 가꾸기 위함입니다. 지금 고통스러운 환난을 겪고 있습니까?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짧지 않는 손을 정녕 믿는다면, 결코 그 상황을 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담대하게 그 상황과 맞닥뜨립시다.

그 상황 속에서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따르십시오. 지금의 그 상황은 바울의 차디찬 감방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징검다리임을 잊지 마십시다. 결코 짧지 않는 손을 지니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祈禱)

하나님 아버지,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갇혀 있던 로마군 요새의 차디찬 감방만 보면, 그것은 인생말년의 버울에게 고통스러운 환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우러러 뵈면, 그 차디찬 감방은 바울이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담대하였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환난을 당할 때, 환난만 보다가, 환난에 질식 당하는 환난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전능하신 손을 지니신 하나님을 우러러뵈며, 그 환난의 징검다리로 담대하게 두 발을 내디딤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미래를 누리게 해 주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미래를 영원하고도 새롭게 개간하기 위함임을 우리 모두 잊지 말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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