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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무얼 위해 살까?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Mar 07, 2019
  • 조회 30

무얼 위해 살까?

안석수 목사

*본문/ 6:22-27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던 교인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그분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지니고 있던 재산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빠짐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소망이 없다던 그분을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습니다.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회복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상을 되찾은 건강으로 그분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재산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건강도 회복되었고, 재산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분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소유를 미련 없이 정리할 때처럼 제 영혼이 맑고 순수해지지는 못할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모든 소유를 미련 없이 포기할 때 영혼은 그토록 맑고 순수했다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 건강으로 왜 영혼의 순결함을 더욱 지킬 수 없었을까요? 미련 없이 나누어 주고 정리했던 물질을 왜 굳이 되찾아 자신의 영적 혼탁을 스스로 한탄하며 살고 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말은 하지만, 예수님의 나의 주인이라 고백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의 물질을 더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적나라한 실상입니다.

 

어린아이가 지니고 있던 오병이어, 즉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토막으로 여자와 아이를 포함하여 최소한 일만 명 이상의 대 군중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를 거두는 대역사를 행하시던 날 밤, 예수님께서는 큰 풍랑이 휘몰아치는 갈릴리 호수를 건너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이튿날 아침이었습니다. 전날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던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풍랑을 잠재우시던 호수에서도, 표적을 행하시던 들판에서도 예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리들은 마침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가버나움에 이르렀어야 그 곳에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리들이 기뻐하면서 예수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6:25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랍비는 선생님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뵙고 기뻐 어절 줄 모르는 무리들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6:26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무리들은 아침부터 예수님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었습니다. 마침내 바다 건너 가버나움까지 불원천리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토록 애쓴 그들이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뵙자 진정으로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왜 예수님을 찾아 헤매었는지, 예수님을 만나 무슨 까닭에 그처럼 기뻐했는지 그들의 중심을 궤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아 예수님께 자신들의 삶을 위탁하려 함이 아니라 당지 어제처럼 그들 육신의 배를 불리기 위함이었습니다.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다고요? 썩을 양식을 위해 귀한 생명을 탕진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썩을 양식을 먹는 사람은 그 양식과 함께

석어지게 마련이지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먹는 사람은 그 양식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벳세다 벌판에서 오병이어 표적을 행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왜 광풍을 잠재우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왜 광란의 파도를 잠잠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예수님,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위해 살도록 깨우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무리들은 여전히 썩을 양식, 썩을 육체의 배를 불리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어리석은 무리들이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얻으려 이 시간 이 자리에 나왔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귀중한 메시지를 얻게 됩니다.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양식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석을 양식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썩을 양식에 대한 바른 인식이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취하고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이요,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썩을 양식을 초월하는 것이요, 썩을 양식을 초월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지금보다 못한 삶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이 세례에 합당한 삶을 사라며 불같은 설교를 토했습니다. 먼저 부자가 요한에게 나아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요한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3:11 -“옷 두 벌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보다 못사는 삶도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부정의 사슬을 끊어 버리지 못합니까? 왜 기업이 탈법과 불법을 스스로 근절하지 못합니까? 지금보다 조금 못살기를 감수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가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세리가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대답은 역시 명쾌했습니다. 3:13 -“정한 세외에는 늑정치 말라.” 네 사욕을 채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금보다 못한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는 공직자들이 뇌물 사건에 연루될까요? 지금 누리는 삶의 규모 줄이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에게 마지막으로 질문을 한 사람은 군인이었습니다.

3:14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요를 족한 줄로 알라.”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거짓 고발하지 말고 주어진 봉급에 만족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금보다 못살 각오를 하라는 말입니다. 왜 일부 정치군인들이 강포하며 무소하며 자기 봉급으로는 상상도 못할 대저택에 살고 있을까요? 지금보다 못살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각 사람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까지 내가 누려온 나의 부가 불법과 탈법에 기초한 것이었다면 그래서 이제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진정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지금보다 못한 삶을 감수하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다운 거룩한 삶을 입으로는 결단하면서도 지금보다 가난한 삶을 감수하기는 꺼린다면, 그가 누구이든 그는 여전히 썩을 양식, 썩을 육체를 섬기는 사람일 따름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많은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동안 일터에서 자행해 오던 불법 관행과 결별한 분들이 있습니다. 꽤 많은 이득이 보장됨에도 신앙 양심에 반하는 사업이기에 미련 없이 포기한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분들에게 영원히 썩지 않을 양식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나아가 썩지 않을 양식을 위해 지금보다 못살기를 두려워 않는 그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참된 권력, 참된 물질, 참된 지식을 맡기실 것입니다. 그분들은 그것들로 인해 썩어질 사람들이 아니라, 그분들이야말로 그것들을 도구로 삼아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청지기들이기 때문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잘 산다는 말의 의미와 지금보다 못사는 삶의 진정한 의미는 또 무엇인지 날마다 바르게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썩을 양식을 초월하여,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취하고 그 양식을 위해 일하는 참된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믿음은 용기임을 잊지 않개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권력이든, 물질이든, 지식이든, 그 모든 것을 도구 삼아 영원히 있을 양식을 위해 일하며, 많은 사람을 살리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향하여는 부끄럼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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