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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이 생각나는 사람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Jul 16, 2018
  • 조회 1783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

    안석수 목사 

*본문/ 11:15-18

 

사람들은 대개 자기에게 유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나쁜 짓을 하고서도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땐다든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 등은 모두 자신의 유리함을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면 더 이상 같은 거짓말을 반복하지 않도록, 그 거짓말이 참말이 되게끔 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3년에 걸친 공생애를 마친 예수님께서 체포 당하시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하시면서 베드로와 나눈 대화 내용이 26:31-35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한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이제 곧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되면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 버릴 것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는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자신만은 결코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리라 큰 소리 쳤습니다. 새벽에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마저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지라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호언장담으로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철석 같이 믿었던 예수님께서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대제사장 무리에게 무기력하게 욕을 당하시는 현장을 보고 얼마나 두려웠던지, 예수님의 면전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공개적으로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닭 울음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는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들을 때만 해도, 베드로는 그것은 자신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은 상당히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한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을 부인한 뒤 닭 울음소리를 듣고서여, 베드로는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 진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 자신의 연약한 실체를 비추어 주는 그 말씀의 참 뜻을 말입니다. 만약 그날 새벽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아 그 말씀의 의미조차 깨달을 수 없었던들, 베드로의 몸은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그의 중심은 예수님과 무관한 자기 교만과 자기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새벽,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 말씀 속에서 자신의 연약한 실체를 재확인함으로 그는 예수님을 겸손히 따르는 제자 베드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스가랴 99은 인간을 구원하실 메시아가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실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것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지만, 제자들은 그때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목격한 후에야 제자들이 9:9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생각나면서, 그 말씀이 곧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면전에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공개적으로 부인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좇아 살게 된 것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마저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었던 것도, 결정적인 순간 그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르게, 다시 말해 우리가 그들을 기억할 필요도 없을 만큼 무의미하게 전개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비난하는 할례 자들에게 가이사랴의 고넬료와 관련하여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성심성의껏 설명해 주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이방인들에게 세례까지 베풀었다는 것은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를 부정하지 않고서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러나 이방인에게 세례까지 베푼다는 것은 이방인을 자신들과 대등한 믿음의 형제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함으로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을 짐승이나 지옥의 땔감으로 간주하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시는 것을 베드로가 목격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베드로에게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씀 앞에서 베드로는 오순절에 자신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듯이, 이방인 고넬료 일횅 역시 성령 세례를 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를테면, 그날은 이방인을 위한 오순절인 셈이었습니다. 그들이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을 확인한 이상, 그들에게 형식적인 물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는 것은 사도로서 직무를 유기하는 일입니다.

만약 그때 베드로에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았더라면, 설령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찾아가 고넬료 일행에게 복음을 전했을지라도 세례를 베풀지는 못했을 것이요, 그랬더라면 교회가 이방인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교회다움이 베드로에 의해 확립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베드로에게 생각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매 순간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기억나게끔, 그리고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끔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태하거나 소홀해도 좋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심령 속에 담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삶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또 기억하게 해주시려 해도 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가하거나 기억하거나 깨닫는다는 것은, 그 이전에 그 말씀을 듣거나 읽거나 체험한 전제 속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던 새벽녘 닭 울음소리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난 것도, 이방인 고넬료 집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난 것도, 그 이전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이 베드로의 심령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어 우리의 마음속에 그 말씀을 차곡차곡 쌓아 가십시다. 그와 동시에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십시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매일 겸손하게 구하며, 성령님의 빛 속에 살아갑시다. 성령님께서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또 그 말씀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관이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때부터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우리 자신을 던질 수 있고 또 우리가 이 어둔 세상을 밝히는 진리의 빛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읽고 듣고 우리의 마음속에 담음으로 성령님께서 삶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생각나게 해주실 그 말씀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의지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거의 대부분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말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이 혼탁한 세상 속에서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매 순간 우리에게 생각나고 기억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유한한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찌 한 순간에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의미를 캐어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반드시 시간과 세월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한 순간에 모두 이해하려는 조급함을 제거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어 우리의 마음속에 담는 일에는 태만함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하루하루 주신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 속에 담긴 말씀의 의미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깊이 깨달아 가는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찬된 생명의 희열을 누리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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