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안석수 목사
*본문/ 출 4:1-6
이 시간 모세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모세가 행한 엄청난 일들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행한 위대한 일에 묻혀 그의 출신 배경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출 3장에서 4장을 읽어 보면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다른 모세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세와 소명을 받았을 때의 모세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그를 변화시켜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운명이 달라지고 삶의 그릇이 달라집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자신이 참된 리더이십니다. 우리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것을 극대화 시키십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어떤 이는 위대하게 태어난다. 어떤 이는 자신의 노력으로 위대해진다. 또 어떤 이는 강제로 떠밀려 위대해진다.”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몇 번째 해당되는 사람일까요?
대개 세상의 위대한 사람을 살펴보면 스스로 자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수필가 윌리엄 헤이즐릿은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은 모세의 어떤 점을 보셨기에 그를 불러 위대하게 사용하신 것일까요?
유대의 전승에 이런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양을 치다가 한 마리 양을 잃었습니다. 결국 온갖 수고와 고생 끝에 그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오는 광경을 보시고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는 사람으로 모세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길 잃은 어린 양을 그렇게 힘을 다해 찾아내는 연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이스라엘을 맡겨도 되겠다.”
사실 여부를 알 수 없으나 이 이야기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는 이유는 능력보다는 성품을 보시는 듯하고, 기술보다는 내면에 잠재된 것을 보고 부르셔서 그것이 드러나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대단히 사소해 보이고 우스꽝스러워도 하나님은 그것을 활용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가문이 좋거나 학식이 높거나 재물이 많거나 인물이 출중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약한 사람을 들어 강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우리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잠재된 능력을 보십니다. 말솜씨가 중요했다면 아론을 쓰시지 왜 모세를 쓰시겠습니까?
모세는 말솜씨를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로 보았지만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사람은 불타는 열정과 사람들을 향한 연민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기술적 능력은 직무를 수행하면서 배우고 심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품이나 잠재력을 보시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고난으로 그를 만들어 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가 부름을 받았을 때 자원하는 심정으로 나온 것은 아닙니다.
가시떨기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는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자원하지 않고, 변명부터 늘어 놓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근심을 알고(출3:7)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라고 작정하시고 모세에게 “이제 가라”(출3:9). “내가 너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3:10)라고 하시는데, 모세는 ‘아멘’으로 응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부합니다.
모세가 처음 광야에 왔을 때 불평불만도 많았고 불편한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장인의 양만을 돌보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적응을 잘하여 그런대로 만족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꿈과 비전을 접은 것입니다. 그 생활 속에서 “이 정도면 됐다”라고 스스로 안주해 타성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안전지대에서 자고 있던 모세를 불러 새로운 모험의 세계로 이끌어 내십니다. 우리는 안전지대에 머물지 말고 신앙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불편한 지대에 오래 머물면 그곳에 익숙해질지 몰라도 그곳에서 나와야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은 모험 때문에 후회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모세나 우리나 무슨 일에 부름을 받으면 순종하여 몸을 던지기보다는 자신이 그 일에 부적합하다는 구실을 찾는데 더 열심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하려는 사람 같습니다. 모세의 핑계를 들어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소명의 세계로 부르시는데, 모세는 순종하기보다는 토론하고 말씀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는 자격에 대한 문제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겠습니까?(출 3:11) 자신은 구원자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출 3:12)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지식에 대한 문제입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습니다.”(출 3:13)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성호를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스스로 있는 자가 너를 보냈다고 하라.“(출 3:14)
세 번째는 공신력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출 4:1)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러 가지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지금 네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가 있지? 그거 한 번 던져 보아라.” 뱀이 되었습니다. 뱀을 피하려는 모세에게 “모세야, 그 뱀의 꼬리를 잡아보아라.”라고 하십니다. 뱀은 꼬리를 잡으면 위험합니다. 그러나 순종함으로 모세가 꼬리를 잡자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표적에도 모세가 ‘별로다!’라는 표정을 지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품안에 넣으라 하십니다. 다시 빼냈을 때 그의 손에는 나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품안에 넣었다 빼내니 이전처럼 온전해졌습니다.
다시 모세를 향해서 나일강 물을 퍼서 던지면 그 물이 피로 변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이 세 가지 표징은 이집트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이집트 사람 앞에서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이런 엄청난 기적을 보고도 모세가 네 번째 핑계를 댑니다. “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출 4:10)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누가 입을 지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겠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를 대변인으로 함께 보내겠다.”(출 4:1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달변 문제로 이의를 제기할 때 그에게 그 능력을 주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세의 입과 혀를 주장하여 당장에라도 팽팽 돌아가게 하셨을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너는 말을 유창하게 할지어다.”그러나 하나님은 말 잘하는 능력을 주시는 대신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라는 원론적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야말로 모든 것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우리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름 받은 사람의 약점을 당장 고쳐주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과 함께하게 하고, 동역자와 함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약속입니다.
정말 모세도 끈질깁니다. 나중에 변명을 하다하다 안 되니 이제는 단도직입적으로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3)라고 대꾸합니다.
자신은 그럴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마치 하나님의 일이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보낼 만한자 를 보내라’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핑계 댈 것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진짜 의중입니다. 이런 사람은 조건을 다 맞추어 줘도 구실만 찾지, 가려 하지 않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은 노를 발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은 오히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약점은 오히려 강점이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완전한 사람이라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됩니다.
우리는 불평함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동정과 관심을 얻기 위해, 또는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하기 위해 불평을 합니다. 그래서 핑계와 불평은 서로 통합니다.
“네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냐?”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물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사명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사람은 ‘없는 것’을 먼저 보지만, 하나님은 ‘있는 것’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찾지 않습니다. 있는 것을 요구하시며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부름을 받았을 때 우리에게 없는 것부터 먼저 생각해 냅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요.” “저는 경험도 없고 능력도 없어요.” “저는 돈도 없고 빽도 없어요.”
“없고” “못하고”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이렇게 “없는 것” 리스트, 못하는 것‘ 리스트만 나열합니다. 모세의 변명은 자신에게는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지식도 없고, 사람들의 신뢰도 없고, 말주변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네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냐?”입니다. 모세는 “지팡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지팡이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필수품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때도 있는 것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시고 떼어 주셔서 결국 5천 명이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은 것을 다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차게 되었습니다. 내가 갖고 있을 때는 한 사람의 한 끼 식사밖에 안 되는 것이지만 주님께 드릴 때는 생명의 양식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적을 경험하고도 제자들은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아 4천 명을 두고 태산 같은 걱정을 했습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우리 손에 쥐고 있는 것, 아니 우리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디는 배우지 못한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전 세계를 다니며 놀랍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한 번은 영국에 가서 전도 집회를 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꾸짖었습니다. “어떻게 당신 같은 영어 구사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전한다고 하십니까? 내가 잠깐 동안 들으니 당신의 말에서 무려 18가지의 문법적 오류가 있었습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러자 무디는 담대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여,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영어 문법에 별로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그 형편없는 나의 언어를 가지고도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에 접해서 이렇게 요구합니다. 내가 영어를 더 잘했으면...., 문장력이 더 좋았으면......, 음악적 소질이 있었으면......, 말을 더 잘했으면...., 그러나 하나님은 없는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둘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름답게 쓰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의 손에 붙들리느냐가 중요합니다. 흔히 말하기를 ‘칼’이 의사의 손에 있느냐, 강도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수술용 칼이 되기도 하고, 사람을 해체는 흉기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을 때, 그것은 목동의 지팡이에 불과했습니다. 오병이어를 아이가 가지고 있을 때는 고작 한 사람의 허기를 간신히 면하게 할 적은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고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오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지팡이를 들고 기도하니 승리했습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표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임재의 시각적 증거입니다. 지팡이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확실한 것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길을 알고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확실한 주님, 우리에게 있는 확실한 것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다. 그러면 나갈 때마다 홍해가 갈라지고, 나갈 때마다 광야에 샘이 터지고, 나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셔서 여러분을 먹이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붙들면 놀라운 길을 걷게 됩니다. 나머지는 가면서 생각하면 됩니다.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아도 한걸음 한 걸음 동행하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온갖 핑계만 대고 거부하는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주신 것, 우리가 잘하고 익숙한 것을 원하십니다. 다만 그분의 손에 붙들림을 받을 때, 평범했던 우리의 것이 하나님의 탁월하신 것이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우리 각자를 찾아와 부르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한 번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소명의 세계로 모세를 부르셨을 때 핑계를 대며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라’했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은 오히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회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약점이 오히려 기적이 됨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는 것을 쓰신다는 것과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야 한다는 두 가지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에게 확실히 있는 것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실 때,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 받는 영광을 얻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