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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믿음의 단순성과 평상심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Apr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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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단순성과 평상심

  안석수목사

*본문/ 12:6-7

 

바다에 아무리 파도가 요동쳐도 바닷속 깊은 곳은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 속의 물은 언제나 평상의 모습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폭우가 쏟아지며 천둥번개가 쉴 새 없이 몰아쳐도, 그름 위의 하늘은 평상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푸르고 태양은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쓰러지는 태풍 속에서도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닷 속의 깊은 물일수록, 구름보다 더 높은 하늘일수록, 뿌리 깊은 나무일수록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평상의 모습 그대로 인 것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깊은 믿음은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의 뿌리를 주님께 깊이 내린 사람은 극한적인 경우에도 평상의 마음을 잃지 않습니다.

다윗 왕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갑자기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다윗은 식음을 전패하고 골방에 들어가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아이를 살려 주시기를 슬피 울며 간구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다윗은 골방을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식음만 전패한 것이 아니라, 목욕도 하지 않고 심지어 얼굴도 씻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기 이레째 되던 날, 다윗의 기도와 달리 아이는 그만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차마 다윗에게 밝힐 수 없었습니다.

골방 밖에서 신하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은 다윗은 아이가 죽었음을 직감하였습니다. 다윗은 신하들을 불러 아이가 죽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신하들은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신하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이레 동안이나 식음을 전패했던 다윗은 그만 탈진하여 그 자리에 쓰러져 몸져누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행동은 신하들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다윗은 즉시 일어나 목욕을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새 옷을 갈아입은 뒤, 무엇보다도 먼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왕궁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밥상을 차려 오게 하여 일주일만에 음식을 먹었습니다.

사무엘하의 기록입니다. 삼하 12:22-23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다윗의 대답 속에서 믿음과 관련하여 3 가지 귀중한 교훈을 께달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믿음은 평상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어린 자식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슬피 울며, 먹지도 않고 이레 동안이나 바닥에 엎드려 기도드렸습니다. 죽어가는 자식을 둔 아비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어린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의 믿음의 깊이는, 그가 자식을 위해 드린 기도의 내용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의 결과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다윗은 이레 동안이나 먹지도 씻지도 않고 기도한 결과가 자신의 바람과 달리 어린 자식의 죽음으로 돌아왔지만, 상심하여 몸져눕지도,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께 대들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은 즉시 몸을 씻고 의관을 정제한 뒤, 여호와의 전을 찾아 자신의 어린 자식을 하나님의 품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 경배 드렸습니다.

그리고 왕궁으로 돌아와 이레 동안 금했던 음식을 먹었습니다. 한마디로 어린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다윗의 평상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4:22 -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5: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리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상황에 따라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결국 당사자의 생명이 흔들림을 뜻하기에 그런 생명은 견고하게 말씀에 뿌리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어떤 경우에든 평상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평상심을 잃는다는 것은, 그 순간 그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평상심은 단순성에서 나옵니다. 욕망으로 인해 번민에 시달리는 마음, 미몽 속을 헤매는 마음, 잡념에 사로잡힌 마음, 두려움과 근심에 억눌린 마음으로는 평상심을 지킬 수 없습니다. 생각과 마음이 단순해질수록 평상심을 지키기 쉽습니다. 평상심과 단순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성의 출처가 자기 자신이라면, 그때의 단순성은 무지와 동의어일 뿐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평상심의 토대가 되는 단순성의 출처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그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결과에 대해 단순해 질 수 있고, 단순해지는 만큼 평상심을 얻게 됩니다.

다윗이 자식의 죽음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면서 평상심을 잃지 않았던 것은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는 사람에게 평상심의 토대인 단순성의 출처가 하나님이시므로, 믿는 사람이 단순해진다는 것은 무지해진다는 말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잠언 910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을수록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지혜로운 사람 일수록 단순성을 지니게 됩니다. 지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지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아는 데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사랑하는 어린 자식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믿었고, 그 자식이 이 땅에서는 비록 죽었으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그 자식을 품고 계심을 믿었고,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그 자식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책임져 주심을 믿는 지혜를 지녔기에 다윗의 믿음은 단순성을 지닐 수 있었고, 그 단순성의 토대위에서 다윗은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펑상심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힘은 단순성에 있습니다. 믿음의 단순성은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할 수 없던 것을 행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나님과 자신의 차이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단순성 이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닐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음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바로 그 단순성 위에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 흔들림 없는 평상심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침내 베드로가 참수형을 당하기 전날 밤이 되었습니다. 한 조를 이룬 네 명의 군사 중 두 명은 베드로가 갇힌 감방 밖에 파수를 서고, 나머지 두 명은 감방 안에서 베드로의 좌우 손을 자신들의 손과 함께 쇠사슬에 묶은 채로 베드로를 감시했습니다. 이제 곧 날이 밝으면 베드로는 참수형을 당해 죽어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 갈수록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며, 불안과 두려움으로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감방 속에서 얼마나 깊이 잠들었던지 주님의 사자가 그의 옆구리를 세게 내리쳐야만 했습니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참수형을 당해 죽어야 할 베드로가 그 급박한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깊이 잠잘 수 있었던 까닭이 그날 밤 주님께서 자신을 감옥으로부터 구출해 주시리라 예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베드로는 마지막 밤 마지막 순간까지, 이튿날 예정된 참수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가 참수형을 앞둔 그 마지막 순간 두 군사 틈 사이에 쇠사슬로 묶여서도, 마치 평소 집에서 잠을 자듯 평상심으로 깊이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 역시 날이 새기 무섭게 자신의 목이 잘려 죽어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 부활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겠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 사흘째 되는 날 죽음을 깨뜨리고 정말 부활하셨고, 베드로가 주활하신 예수님을 정말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베드로와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그 주님을 위해 참수형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베드로는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님을 위해 참수형을 당하는 자신의 생명을 영원토록 책임져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오, 이 땅에서 우리에게 더 이상의 하루가 필요 없는 순간부터는 죽음을 깨뜨리신 주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영원히 책임져 주실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의 지혜를 지닐 때부터 우리의 믿음은 믿음의 절정인 단순성에 이를 수 있고, 그 믿음의 단순성으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던 것도 이해하고, 또 할 수 없던 것도 행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고, 결코 거창한 것도 아닙니다. 복잡하고 난해하고 거창한 것은 불신의 산물일 따름입니다. 믿음의 힘은 단순성에 있고, 믿음은 그 단순성의 토대 위에서 어떤 경우에든 흔들림 없는 평상심을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와 말씀을 통해 경건 훈련을 행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단순성과 평상심을 배양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단순성과 평상심을 통로로 삼아 이루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생명의 주관자이신 주님을 믿을수록 우리의 믿음이 단순성의 지혜를 지니게 됨을 잊지 말게 해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오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단순성 위에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는 평상심을 지니게 해 주옵소서. 베드로의 단순성과 평상심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단순성과 평상심을 통로로 삼아 흔들리는 이 나라를 굳건하게 붙들어 주시고, 또 이 시대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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